[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가 내게 알려준 것들
한 때는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녔다. "나는 돈 많이 벌지 않아도 돼. 적게 쓰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거야."라고. 많이 어렸고, 꿈을 꾸었고, 꿈속에 살았다. 여러 해를 지나며, 나에게 혹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직-간접적으로 겪으며 깨달았다. 애초에 내가 돈을 얼마나 벌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나의 선택을 넘어서는 영역이 더 많았다. 아니, '많고', '적음'의 기준조차 모호했다. 백만 원, 천만 원, 일억, 십억, 얼마만큼의 돈이 많은 돈인가. 한 달에 얼마만큼의 돈을 써야 적게 쓰는 걸까.
2019년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 즉 대한민국 국민 총소득을 조사해 나열해 중앙에 위치하는 소득이다. 이것이 170만 원 정도인데 이 정도면 어떨까. 이 돈이면 방세, 공과금, 생활비, 교통비, 통신비 등을 제하고 나면 부족하거나 빠듯하게 생활할 것이다. 그렇다고 일을 하는 시간이 적어 여유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더 많다. 이것이 현실이다. 간단한 예로도 알 수 있듯이 나는 기본적인 경제관념이 없다. 어디에서 배운 적도 없고, 평소에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거나 책을 읽지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속물'이 아니라며 멀리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좀 어렵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내가 지금 책 몇 권 읽는다고 내 생활이 달라지거나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 "전문가 정도는 아니라도 살아가면서 너무 몰라서 손해를 보지 않을 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이 책이 그 첫걸음이 되어줄 것이다.
경제와 역사를 엮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쉽다. 경제와 역사 그 무엇 하나 일반인 기준에 못 미친다 자신하는 나에게마저 그렇다는 이야기는, 글을 읽을 수 있는 누구라도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못 믿겠다면 참을성을 가지고 글을 조금만 더 읽어보자. 밑져도 본전 이상은 건질 수 있을 것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이후 100년 동안 스페인은 엄청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잉카와 마야 제국을 침략해 많은 금, 은, 귀금속 등의 약탈을 시작으로
1545년 볼리비아 포토시(Potosi)에서 사상 최대 규모 은광 발견
1546년 9월 8일 멕시코 사카테카스(Zacatecas)에서 풍부한 은맥의 존재를 확인
1540년 이탈리아의 기술자인 바노초 비링구초(Vannoccio Biringuccio)가 수은을 이용해 광물에서 금속을 추출하는 새롭고도 대단히 효율적인 공법을 제시
이로써 스페인은 거대한 광산과 혁신적인 제련 기법을 통해 엄청난 부를 손에 넣게 된다. 이 대목에서 일반적인 '나'같은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스페인이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니, 좋은 일이구나." 하지만 이것이 스페인에게 '좋은 일'만은 아니었음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스페인이 엄청난 양의 금과 은을 획득했단 말은 화폐 공급, 즉 통화량이 증가했다는 이야기다. 나라에 돈이 갑자기 많아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은 물건을 살 것이다. 돈이 많아지니 소비가 뒤따르는 것이다. 200만 원 벌던 사람이 갑자기 500만 원을 번다면 어떻겠는가.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때 물건 생산이 소비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부족한 물건은 주변국으로부터 수입을 한다. 결국 금과 은은 스페인을 통해 다른 나라로 유출되게 된다. 이것을 '네덜란드 병(Dutch disease)'이라고 한다.
1959년 네덜란드는 북해에서 대규모 가스전을 발견하였고, 이후 천연가스 수출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였다. 그런데 수출 대금이 유입되자 네덜란드 화폐 단위인 굴덴화의 가치가 크게 상승해 1970년대에 들어 천연가스를 제외한 수출업체들은 해외에서 경쟁력을 잃게 된다. 이렇듯 자원이 개발된 후 오히려 해당 국가의 경제가 침체되는 현상을 '네덜란드 병'이라고 지칭한다.
결국 돈이 무작정 많은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흔히 무조건 돈이 많아지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만약 현대에 통화량이 갑자기 늘고,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어떨까. 금리를 인상해 경제 전체의 수요를 진정시키는 것이 첫 번째 대책일 것이다. 그 당시 스페인에는 중앙은행이 없었기 때문에 그러한 조치를 취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끄럽지만, 나는 산업 혁명이 영국에서 처음 일어났다는 사실도 몰랐다. 학교에서 배웠는데 잊어버렸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제는 안다. 그리고 동양이 서양보다 15세기 이후 쭉 더 잘 살다가 18세기 중반 이후로 추월당하기 시작했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때문일 것이다. 왜 동양에서는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왜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된 것일까.
산업 혁명 이전에는 인구가 늘면 1인당 소득이 줄고, 반대로 인구가 줄면 1인당 소득이 늘어났다. 중국이나 일본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인구 과잉' 때문일 것이다. 인구가 늘어나면 저임금 노동력이 늘어나게 된다. 기술을 발전시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노동력이 부족하고 비쌀 때, 기술 발전으로 노동생산성을 끌어올려야만 하는 필요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명나라 후기(17세기)에 1억을 돌파한 후 지속적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 또한 전국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1800년경 일본은 중국 청나라처럼 인구 과잉 시대로 진입했다. 이렇게 인구 과잉이 있게 되면, 공예나 원예가 발달하고 값싼 노동력을 최대한 활용해 경제의 외형을 키우는 '근면 혁명'이 일어나게 된다.
반면에 영국은,
밀의 생산성이 동양의 쌀에 비해 훨씬 낮았다. (식량 부족으로 인구 증가 저해)
잉여 농산물을 풍족하게 가졌기 때문에 '잉여 인력'을 해외 혹은 해병에 신병 충원
북대서양을 아우르는 거대한 상거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강력한 해군 육성
17세기부터 시작된 금융 시장 혁신에 저금리로 막대한 자금 조달
강한 해군으로 외적으로부터 국토 방어 성공
뉴턴 같은 과학자들을 우대한 전통과 전화(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간 지식인과 자본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인구가 적어 노동력이 비싸고 낮은 금리로 막대한 자본을 동원할 수 있었던 점이 가장 주요한 원인으로 볼 수 있겠다.
역사를 경제의 시각에서 보는 일이 이렇게 흥미롭고 즐거울 수 있는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책을 시작으로 나의 경제 그리고 역사에 대한 궁금증은 폭증하고 있다. 또한 경제와 역사에 대한 진입장벽이 한결 낮아졌음을 느낀다. 나와 같이 언젠가 경제에 대해 공부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홍춘욱 박사님이 지은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를 꼭 읽어보기 바란다. (역사 지식과 재미는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