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를 읽고,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는 나를 많이 예뻐해 주셨다. 항상 자전거 뒷자리에 나를 태우고 새벽 6시에 목욕탕을 데려가 주셨다. 목욕을 마치고 나올 때면 언제나 내 손에는 초콜릿 우유가 들려져 있었다. 약주를 거나하게 드신 날은 맛있는 과자가 든 봉지를 들고 들어오시기도 했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좋아서 몇일씩 할아버지 댁에서 머물곤 했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다른 손자들이 태어나서 예전만큼 사랑을 독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자상한 할아버지의 느낌을 기억한다. 그런 할아버지가 췌장암 선고를 받았다. 몇 해를 투병하시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일 때 돌아가셨다. 투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내 안에 남겨진 몇몇 기억들과 그때 내가 한 생각들은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
할아버지가 투병을 하시면서 나는 할아버지 팔-다리를 주물러 드리기 위해 들리고는 했다. 어렸을 적부터 자주 주물러드렸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팔-다리는 부종이 심해 한 번 꾸욱 누르면 그 자리가 쑤욱 들어가서 좀처럼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게 이상했다. 그래서 몇 번 가다가 가는 걸 멈췄다. 왜 그랬는지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런 모습의 할아버지를 나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동시에 계속 가지 않아서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또한 많이 서운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이후 할아버지의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는 그것이 마음에 크게 와 닿지 않았던 것 같다. 인생의 마지막 나날들을 병으로 고통받으며 보내신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때 즈음에 "내가 아픈 이에게 뭔가를 해줄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아마도 나중에 내가 의학을 공부하기 위한 동기를 찾다가 스스로 연결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어찌 되었든 그 인상과 기억은 내 안에서 두고두고 회자되었고 어떤 동기가 되어주었다.
나는 죽는 것이 무섭다. 얼마나 무섭냐고 하면 상상만으로 아찔함을 느끼고 무너져 내릴 것만 같다. 살면서 몇 번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되는 순간들을 경험했다. 정말 너무 두려워서 소리치고 도망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죽는다.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 죽음과 죽어감에 관한 실질적 조언』 (원제 :Advice for Future Corpses)을 읽으며, 앞으로 내가 옆에서 지켜봐야 할 사람들의 죽음과 결국은 겪어야 할 나의 죽음에 대한 진지하고 실제적인 사실들을 마주한다. 옆에서 죽음을 맞을 때까지 '보호자'로서 함께 하며 꼭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과 해야 할 말. 나 자신이 죽어갈 때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질 수 있는지. 작가이자, 오랫동안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완화의료를 제공해온 팀의 간호사로서 단호하지만 배려하는 마음이 묻어나는 조언을 한다.
당신이 죽어가는 사람이라면 하고 싶은 말은 뭐든 해도 된다. 아무 때나 누구에게나 말이다. 반대로 입 꾹 다물고 가만히 있어도 된다. (p.97)
죽어가는 사람을 돌볼 때 에너지의 절반은 경청하는 데 써야 한다. (p.98)
죽어가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사람은 '보호자'가 된다. 보호자는 중용과 프라이버시, 침묵과 웃음 등 일상생활에서 놓칠 수 있는 온갖 일들의 옹호자요, 죽어가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줄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 또한 '문지기' 역할도 해야 한다. (p.98)
구체적으로 물어보라. 슬퍼하거나 화내도 된다고 허락하라. 졸려하거나 지겨워해도 된다고 허락하라. 죽겠다고 하는 것만 빼고 뭐든 해도 된다고 허락하라. (p.101)
죽어가는 사람을 상대할 때는 늘 솔직해야 한다. 환자에게는 물론이요, 당신 자신에게도 말이다. (...) 당신 자신에게 솔직해야 당신이 진심으로 줄 수 있는 것을 기꺼이 제공할 수 있다. 아픈 사람에게 부담 주지 않는 선에서 당신의 감정 상태를 솔직하게 드러내라. (p.101)
주옥같고 진심 어린 그리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현실적인 조언들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기를 반복했다. 그동안의 기억들이 올라왔고, 앞으로 나와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이 겪을 일들을 떠올렸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했던 말과 행동을 돌아보며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다. 죽음을 앞둔 이들이 느꼈을 혼란과 무너져 내리는 삶에 대한 느낌을 생각하며 묵직하게 가슴을 짓누르는 느낌을 느꼈다.
당신은 어떠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가. 조용하고 어두운 방에서 홀로 맞는 죽음을 원하는가 아니면 모든 가족이 둘러 모여 있는 가운데 죽음을 맞고 싶은가. 잠을 자는 가운데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좋은 죽음'을 생각하면 흔히 경건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편안하게 마지막 숨을 내뱉으며 맞이하는 죽음을 생각할지 모른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그리고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품위 있는 죽음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좋은 죽음 일지는 알 수 없다. 당신이 죽음을 생각할 때 그 안에 타인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죽음이 특정한 방식을 띠어야 할 필요는 없다. 어떤 형태의 죽음이라도 괜찮다.
내 죽음은 오로지 내 소관이며, 내 죽음의 가치는 내가 정하는 것이다.
막연히 '좋은 죽음'을 바라지 말고, '적합한 죽음'을 고민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p.77)
이 글은 대교와 체인지그라운드가 함께 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1기 '실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룹의 12번째 책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