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이, 행복한 노년을 꿈꾼다

책 『행복의 조건』을 읽고,

by 백두산

어릴 적 국민학교를 다니던 나는 정말 한 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같이 놀 친구를 찾아 그리고 놀거리를 찾아서 동네를 배회하며 열심히도 다녔었다. 학교에서 형들이 욕하는 것을 따라 하며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를 욕을 거침없이 하던 때도 있었고, 친구와 주먹다짐을 하기도 했었다. 짓궂은 장난으로 학교에서 선생님께 혼이 나기도 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지 못해 벌을 서기도 했다. 행복한 일들도 많았을 텐데 생각나는 것들은 대체로 못마땅한 기억뿐이다. 함께 놀던 친구들의 얼굴은 흐릿해져 기억이 나지 않는다.


10대에는 '관계'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다. 어떤 친구를 어떻게 사귀며, 나는 그들에게 어떤 친구가 되고 싶은가. 이런 종류의 고민을 많이 했다. 그만큼 관계를 만드는 것이 어려웠고, 남중-남고를 다니며 그 안에서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기억이 있다. 20대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별생각 없이 고등학교를 다니며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다. 당연히 공부도 잘 못해서 선택지가 많지 않기도 했다. 공허함을 많이 느꼈다. 그럴 때면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며 애써 피해보려 했다. 어떻게 해야 공허함을 지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으려고 나름 부단히 노력한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30대인 나는 아직도 많은 삶의 과제들을 안고 살고 있다. 계속 공부를 해나가고 있기에 고정적인 수입이 없고, 직업도 아직은 없다. 학생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측면이 많은 불안정한 시기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 '공허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평생 공부하기에 충분히 깊이 있고 방대한 학문을 만났고, 조금씩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 함께 공부하고 성장해 나가는 친구들이 있고, 훌륭한 선생님도 만났다. 내 나이 때 친구들은 결혼해서 가족을 꾸리고, 직장을 다니며 사회적인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에 비하면 부족할지 모른다.


삶의 또 다른 중요한 시기에서 나는 조지 베일런트가 쓴『행복의 조건』을 만났다.

행복의 조건 표지.jpg 『행복의 조건』조지 베일런트 저, 이덕남 역


무려 814명에 이르는 성인 남녀의 삶을 젊었을 때부터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과 그들의 삶을 70여 년 동안 연구해온 '하버드대학교 성인발달연구'의 총책임자로서 42년 동안의 기록과 그의 해석이 담긴 책이다. 여러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한 삶을 성취하고 나아가 행복한 노년을 맞아가고 있는지, 반대로 무엇이 그들이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데 걸림돌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인도에서 나는 갓 스무 살이 된 친구들부터 20대 중-후반 친구들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외국인인 나는 그들에게 실제 나이보다 더 젊어 보이는 것이 스스럼없이 교류를 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이고, 서로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 것이 나이가 그 친구들과 교류를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다. 나 스스로도 나이를 별로 생각하지 않으니 스스럼없이 터놓고 토론하고 서로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여러 모임에 참가해보며 느낀 점은 "내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니구나"라는 점이다. 스무 살 대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자꾸만 나이를 생각하게 되는 것은 오히려 자유롭게 토론하고 교류를 하는데 하나의 장해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가 내 나이에 맞게 행동을 해야만 한다는 '무언의 압박' 같은 것을 느낀다. 솔직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러워진다. 그러면서 생각한다. 내가 앞으로 물리적으로 더 젊어질 가능성은 없으니 나이가 들면서 균형감 있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조화롭게 어울리며 교류하고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발달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인 에릭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발달 단계'를 기본으로 성인이 이루어야 할 여섯 가지 발달과업을 이야기한다.


1. 정체성 - 부모로부터 독립된 자기만의 생각, 즉 자기만의 가치, 정치적 견해, 열정, 취향 등을 가지는 것이다.


2. 친밀감 - 다른 사람과 함께 서로 의지하고 돕고 헌신하며 만족스러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3. 직업적 안정 -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의 세계에서 사회적 정체성을 확립한다.


4. 생산성 - 공동체 형성을 의미하며, 사회 각 분야에서 젊은 성인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과정에서 성취할 수 있다.


5. 의미의 수호자 - 자기 아이들의 성장보다는 인류의 집단적 성과물, 즉 인류의 문화와 제도를 보호-보존하는 데 초점을 둔다.


6. 통합 - 아무리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오직 하나뿐이며,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는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인생의 위대한 과업들 중 맨 마지막에 성취된다.


연구 대상자들을 관찰해본 결과, 성인의 발단은 아이들의 지능 발달처럼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사람마다 먼저 성취하는 것과 나중에 성취하는 것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삶에서 이 여섯 가지 과업을 하나하나 성취하는 사람이 더 행복하고 균형 잡힌 노년을 보내는 것으로 보인다.


나를 돌아보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친밀감을 배워나가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직업적 안정성을 아직 이루지 못했고, 이루어나가는 과정에 놓여있다. 당연히 아직 생산성을 성취하지 못했다. 앞으로 10년은 열심히 배우고 노력해야만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이후에 의미의 수호자와 통합의 과업을 이룰 시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러한 과업들을 성취하는 것이 건강하고 행복한 미래의 노년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애덤 카슨의 경우를 살펴보면, 성인발달의 6가지 과업을 좀 더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애덤 카슨이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 정신과 의사는 그에 대해 " 정신력이 강하고, 감성이 풍부하며, 활기차고 행복하며 낙관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그의 부모는 그를 '완벽한 아들'이라고 설명했다. 애덤 카슨은 대체로 모범적인 학생이었지만 가족들 몰래 오토바이를 구입했고 성관계를 하기도 했으며, 특히 춤을 좋아하고 소질도 있어서 의학 공부를 포기하고 무용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곧 아버지의 뜻대로 하버드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녔으며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정체성 측면에서 애덤 카슨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자신만의 생각을 갖는데 비교적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물두 살에 다정한 누이처럼 다가온 상대자와 결혼했는데, 이것이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결혼생활은 무미건조해졌고 부부간에 다툼이 잦아졌다. 사십 대에 들어서까지 그러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최소한의 친밀성을 성취했다고 보인다. 서른여섯 살의 애덤 카슨은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렸고 연구에서 얻는 기쁨 또한 커졌다. 그러다 마침내 그는 유명한 의과대학에서 종신 재직권이 있는 부교수가 되었다. 직업적 안정을 이룬 것이다.


47세에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해서 다시 행복한 결혼생활을 되찾은 그는 병원을 개업한 뒤에 매력적인 의사로 탈바꿈했다. 그는 상냥하고 평온하고 친절했으며, 연구자가 아닌 개업의로 환자들과 생산적인 관계를 맺는 것에서 기쁨을 만끽하는 듯했다. 생산성을 성취하는 것이다. 47세가 된 카슨은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훈계에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며, 자기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관심은 눈앞에 보이는 세계 그 이상으로 확장되지 못했다.


65세가 된 애덤 카슨은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 의학에 대한 관심이 한층 폭넓어졌으며, 의학의 전통과 윤리적 기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의과 학생들에게 환자들과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마침내 의미의 수호자가 된 것이다.


70세가 되자, 카슨은 병원일을 맡기고 은퇴했다. 그리고 그는 의학윤리 정립을 위해 새로 건립된 헤이스팅스연구소 일을 시작했다. 그는 평생 국제의학윤리에 새로운 열정을 쏟아부었다.


카슨의 아내는 그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애덤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하고 성실하고 사려 깊은 남자입니다. 아주 너그럽기도 하고요. (중략) 그의 예리한 판단력과 통찰력에 놀랄 때가 많지요. (중략) 애덤은 모든 환자들, 친구들, 가족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베풀고 있답니다."


나는 그가 통합의 길로 들어섰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보며 '나는 어떤 배우자를 만나야 할까'에 대한 생각도 해본다. 행복한 노년을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배우자와 돈독하고 성숙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서로 터놓고 대화를 할 수 있으며, 서로가 서로의 감정에 주의를 기울일 줄 알았다. 평등한 관계이며 서로 무척이나 사랑하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책에서 나온 사례를 쭉 읽다 보니, 내가 이런 상대를 만나려면 나부터 그만큼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만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사람만 노력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니말이다.


나에게 많은 숙제와 희망을 남겨준 책이다. 앞으로 내가 이룰 과제들과 그로 인해 만들어갈 행복한 노년을 꿈꾸며 오늘도 나는 책을 읽고 공부하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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