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하고 일정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책『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by 백두산

21살에 군대에 입대했다. 정확한 이유는 생각나지 않지만 공군에 지원해 육군에서 영장이 나오기 전에 가게 됐다. 6주(?) 간의 기본 교육을 마치고 다시 계열별로 분류돼 2주 간의 교육을 받는다. 나는 헌병으로 분류됐다. 헌병 병과라고 하면 키가 큰 사람들만 가는 줄 알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지켜야 하는 곳은 부대의 정문과 후문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 보이지 않는 곳에 출입을 통제하고 지켜야 하는 곳이 아주 많다. 여하튼 모든 교육을 마치고 군산에 위치한 비행전대로 배치를 받았다. 그곳에서 다시 내무반에 가기 전 며칠 정도 같은 기수 혹은 가까운 기수끼리 머물면서 실제 근무할 곳으로 배치되기를 기다린다. 몇일에서 길게는 약 1주일 정도 기간이었던 것 같은데, 그곳에는 선임이 없어서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었다. 별로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내가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을 만난 것이 그때다. 일 년에 몇 권 읽지 않던 책을 그때 너무 따분하고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우연하게 손에 잡게 됐다. 몇 장을 읽으면서 급격히 빠져들었고, 단숨에 한 권을 뚝딱 읽어버렸다.




그런 일은 내 생에서 아주 드물게 벌어진다. 책 '퇴마록'을 처음 읽었을 때 일어났던 것과 비슷한 일인데 그 외에는 좀처럼 그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책은 그때의 나에게 어쨌든 기본적으로 지루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물건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상실의 시대' (노르웨이의 숲)는 나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다. 말하자면, "책이 이렇게 잘 읽힐 수가 있나?!", "이건 뭔데 이렇게 흥미롭지?!", "와... 신비롭다" 이런 식의 감탄을 자아냈다. 이후 내무반을 배정받아 제일 힘없는 막내로 '이병 생활'에 치여 금방 그런 기억은 잊혀 갔다. 그러다 상병을 달고 병장이 되면서 시간이 조금씩 생겼고 <<댄스 댄스 댄스>>, <<태엽 감은 새>>, <<해변의 카프카>> 등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하나하나 읽어갔다. 평범한 어떤 사건들이 비밀스럽고, 세세하고 섬세하게 묘사되어서 그런 점이 나는 너무 좋았다. 글을 읽고 있자면, 이런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무라키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고, 그의 책을 읽으며 들었던 감탄은 더 넓은 의미의 감탄으로 확장됐다. 인간으로서 삶을 대하는 기본적이고 일정한 태도, 작가로서 글을 쓰기 위해 "마음먹고 삶을 밑바탕부터 바꿔버린" 단호한 결의와 그것을 실행하는 지독하리만치 끈기 있는 면모를 엿볼 수 있었다. 반면에 본인은 그런 대단한 일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한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서 배가 고파 밥을 먹고, 졸려서 잠을 잤다'는 식으로 솔직하고 일상적인 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누군가는 잘난척하는 듯 볼 수도 있고 그래서 오만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 문학계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일부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을, 비위 맞추지 않는 사람을, 기존에 짜인 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을 틀 안에서 힘을 갖고 있는 이들이 좋게 볼리 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무라카미 하루키이기 때문에, 그런 자유롭고 독자적인 면면이 녹아있는 그의 소설이라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그는 장편소설을 쓸 경우, 하루 200자 원고지 20매를 쓴다고 한다. 스토리 전개가 잘 돼 글이 잘 써질 때도, 그렇지 않을 때도.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6개월 혹은 그 이상. 하루 4-5시간은 책상에 앉아 그렇게 글을 써서 초고를 완성한다. 첫 번째 고쳐쓰기. 전체적으로 손을 보는 과정으로 한 두 달의 시간이 소요된다. 두 번째 고쳐쓰기. 처음부터 좀 더 세세한 부분을 고쳐 쓰는 과정이다. 세 번째 고쳐쓰기. 수술이라기보다는 수정에 가까운 과정으로 나사를 조여야 할 곳과 풀어야 할 곳을 결정한다. 말하자면, 전체 이야기와 세부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다. 그런 후 '재워 두는' 과정을 거친다. 한동안 손대지 않고 넣어둔다. 그러면 작품은 숙성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충분히 재워둔 작품은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다시 한번 수정을 거친다. 일련의 과정을 거친 글은 이제 제삼자에게 보여주고 의견을 듣는다. 그리고 다시 고친다. 그 글을 편집자에게 보내고 편집자의 의견을 듣고 다시 고치고 또 고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더 이상 고칠 부분이 없다고 느껴질 때에야 비로소 그 소설은 책으로 나온다. 이런 과정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




그래서 그는 작가의 자질이 그런 지난한 과정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특별한 자격'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재능과는 좀 다른 개념으로 어찌 보면 비효율적이고 지루하고 고독하고 힘든 작업을 오랜 기간에 걸쳐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어찌 보면 작가에게만 필요한 일은 아니다.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실력을 키우고 어떤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틀림없이 거치지 않았을까. 단지 글을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비슷하다 생각한다.




자신이 잘하는 언어를 무기로 삼아서 자신의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을 자신이 쓰기 쉬운 말로 써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p.138)


무라카미 하루키의 표현대로 읽고 생각하다 보면 문득 나도 마치 그와 같은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모든 작가라면 거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할 결단과 실행력을 갖추고 "마음먹고 나의 삶을 밑바탕부터" 글을 쓰는데 적합하도록 바꿔야 할 것이다. 그런 준비가 되어있는가에 문제일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인간적으로 더 좋아졌다. 삶을 대하는 그의 태도와 작가로서의 진지함이 나에게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다. 더불어 많은 부분에서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그가 보여줄 새로운 작품이 기대된다.




KakaoTalk_20190716_003934139.jpg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무라카미 하루키 저, 양윤옥 역




이 글은 대교가 후원하고 체인지그라운드가 함께 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2기 '우리는 모두 크리에이터다' 그룹의 3번째 책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