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관찰의 인문학>을 읽고,
2004년 12월 내 생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인도. 고등학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간 것을 제외하면(기대한 것에 비해 대단히 짧은 비행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를 가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거의 모든 것들에 의욕적이었다. 하고 싶은 일도, 보고 직접 경험해보고 싶은 것도 많을 때였다. 영어를 하나도 말할 수 없었지만 무식했기에 용감했다. 가서 부딪치면 어떻게든 될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 함께 가는 일행이 있었기에 두려움이 덜 하기도 했다.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비행기에 몸을 싣었다. 너무 긴장한 탓이었는지 아침 먹은 것이 체해서 비행기에 있는 내내 엎드려 있어야만 했다. 그 후로 비행기에 타기 전에는 웬만하면 음식을 먹지 않는다.
인도에 도착해 내리면서 내가 인도라는 나라에 도착했음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냄새'였다. 좋거나 안 좋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인도가 가진 특유의 냄새를 나는 기억한다. 내가 처음 맡은 '냄새'는 아마 수없이 많은 요소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특유의 '향'일 것이다. 인도에 도착해서 공항 택시를 잡아타고 도로를 달리며 나는 또 다른 특이한 광경을 목격했다. 도로는 분명 3차선으로 표시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차는 4대가 함께 도로를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옆에서 달리고 있는 차와 내가 타고 있는 차와의 간격은 대단히 가까워서 창문을 내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모든 차와 릭샤(삼륜차에 좌석을 만든 인도의 교통수단)가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황당하기도 했고, 신기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풍경과는 다른 점이 많아서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볼 수 있었다.
책 <관찰의 인문학>의 저자 알렉산드라 호로비츠는 열한 명의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와의 평범한 산책을 통해 우리가 보고 있지만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평범한 동네길을 거닐며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냄새) 맡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19개월 된 아이가 산책하며 모든 새로운 물체를 바라보고 느낀다. 지질학자는 건물에 쓰인 돌에 새겨진 흔적을 좇아 수억 년의 세월을 들여다본다. 타이포그라퍼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뜯어보고 분석하며 건물의 대략적인 역사를 알아보기도 한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산책을 함에 자유분방하며 공간에 대한 다른 태도와 관점을 보여준다. 곤충 박사는 도심에 서식하는 수많은 곤충의 흔적을 보여주고, 야생동물 연구가는 도시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너구리, 쥐, 비둘기 등의 흔적과 서식지 그리고 행동방식 등을 이야기한다. 도시사회학자는 도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동하는 방식에 대한 관찰과 무언의 규칙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관찰한다. 의사와 물리치료사는 사람들의 걸음과 표면상의 모습에서 그들의 상태를 유추해낸다. 시각장애인과의 산책에서는 보이지 않는 이가 소리를 듣고 다른 감각을 활용해 보는 것은 오직 눈으로 하는 것만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음향 엔지니어는 수많은 소리를 듣고 관찰하는 법을. 마지막으로 반려견 피니건은 냄새로 사물을 관찰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본다'는 행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다른 감각 또한 열어두고 주의와 관심을 두는 것이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판단하지 않은 상태로 모든 것을 경험하고 관찰하는 행위이자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해 탐구해가는 과정이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서는 하기 힘든 일 중 하나다.
외국인들은 한국-일본-중국 사람들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 눈에는 모두가 다 같은 동양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는 구별할 수 있다. 각 나라 사람들을 볼 때 구별해야 할 특징과 복장, 느낌 등을 종합해 그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유추할 수 있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 듣지 않고도 말이다. 나도 처음 인도에 가서는 인도 친구들을 잘 구별하지 못했다. 특별한 특징을 가진 친구가 아니면 다 비슷하다고 인식되었다. 어떤 것들을 눈여겨 관찰하고 구별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책 <관찰의 인문학>은 우리에게 우리가 생활하는 일상 속에서 주의를 기울임에 따라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는지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관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사고를 확장하고 편견을 갖지 않은 채 보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를 가져다주거나 물질적인 풍요를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평평한 일상에서 울퉁불퉁한 의외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관찰하는 재미를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있었지만 보고 있지 않았던 대상들. 그것이 알고 싶다면 읽어보자.
이 글은 대교와 체인지그라운드가 함께 하는 무료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2기 '우리는 모두 크리에이터다' 그룹의 2번째 책 <관찰의 인문학>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