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기술, 방대한 정보 속에서 내 삶은 어디에
18분 동안 스파게티면 20가닥, 접착테이프, 실, 그리고 마시멜로 한 개로 탑을 쌓아야 합니다. 처음 만난 4명이 둥근 테이블에 이 탑을 쌓습니다. 미국 경영대학원(MBA) 학생들이나 변호사처럼 소위 가방 끈이 길다고 하는 명석한 사람들이 쌓은 탑의 높이가 유치원생들이 쌓은 탑의 높이보다 현저히 낮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실험은 톰 우젝(Tom Wujec)이라는 학자가 한 실험입니다.
왜 소위 뛰어난 사람들이 유치원생들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었던 걸까요. 그 비밀은 이들이 이 문제를 해결한 방식에 있습니다. 똑똑한 어른들은 여러 가지 가설을 세우고 그에 따른 계획을 수립합니다. 계획이 확정되면, 거기에 따라 탑을 쌓습니다. 하지만 유치원생들은 다릅니다. 유치원생들은 각자 탑을 만듭니다. 이런 방법으로도 해보고 저런 방법으로도 해봅니다. 그렇게 18분 동안 여러 방법으로 여러 번 탑을 쌓습니다. 성공하면 남는 시간에 더 높은 탑을 쌓습니다. 이렇게 적게는 세 개, 많게는 여섯 개의 탑을 완성합니다. 이것이 유치원생들이 똑똑한 어른들보다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더 높을 탑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이것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책 『열두 발자국』에서 뇌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정재승 교수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처음 해보는 일은 계획할 수 없습니다. 혁신은 계획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혁신은 다양한 시도를 하고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해나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건 계획을 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목표를 완수하기 위해 계획을 끊임없이 수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혁신을 해야 한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실패를 하면 안 됩니다. 한 번 실패하면 다시 일어나서 시도하기 너무나 어려운 현실이니까요. 이래서는 어떠한 혁신도 이룰 수 없습니다. 간단한 실험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의 사례에서 보여주듯이 혁신은 실패하고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다시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집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대박을 터트리기까지 평균 4회 가까이 실패한다’는 통계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타트업을 시도했다가 실패해본 경험이 대기업에 취업한 경험 못지않게 좋은 경력으로 인정받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나이 제한도 없답니다. 이 대목에서 왜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적인 기업이 많이 나오는지 그리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시도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알파고와 이세돌 구단의 ‘세기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4승 1패의 성적으로 완승을 거두면서 AI(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의 발전을 체감하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넘어 일종의 공포를 경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의 허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산업혁명’이란 사람들이 그 변화를 충분히 경험한 뒤 산업-사회-문화가 완전히 ‘혁명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한 후 나중에 붙여진 이름이었다고 하니,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는 지금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정재승 교수는 책 『열두 발자국』에서 우리나라는 아직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작되지 않은 4차 산업혁명이지만 ‘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많은 곳에서 잦은 빈도로 사용돼 심지어 ‘4차 산업혁명’이란 단어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제4차 산업혁명은 제3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디지털 기술이 아톰 세계와 비트 세계를 일치시키고 이를 1, 2차 산업혁명의 결과물인 유통-제조업에 접목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산업 구조를 만들겠다는 ‘1,2,3차 산업혁명의 융합 혁명’인 셈입니다.”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해 무엇보다 많은 관심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일자리’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면서 현재까지 유망했던 많은 직업들이 사라지거나 다른 유망한 직업들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약사라는 직업은 어떻게 변할까요? 현재 약사가 하는 업무는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하다고 합니다. 처방전을 넣으면 자동으로 약을 조제해서 포장까지 해주는 서비스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죠. 증세를 말하면 적절한 약을 권해주는 역할도 인공지능으로 할 수 있습니다. 20명의 약사를 고용한 대규모 약국은 그런 기계를 도입하고 2-3명의 약사만으로 운영할 겁니다. 그렇다면 약사라는 직업은 이렇게 서서히 사라질까요? 아마 약국이라고 곳의 역할, 약사라는 직업의 역할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겁니다.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른 진화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외국어 통번역 분야에서도 인공지능이 큰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측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기계 번역이 전문가를 넘어설 수 있는가 없는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글 번역기가 93퍼센트의 정확도만 낼 수 있어도 통번역 일자리의 지형도는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모든 외국의 웹사이트의 정보를 한국어로 읽을 수 있고, 16개 언어 사이에 실시간 통역이 가능해집니다. 100% 정확하지 않아도 의미를 파악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니 통번역 일자리의 미래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기계 번역이 인간 번역을 언제 역전할까 가 아니라 기계 번역이 언제쯤 ‘쓸 만한 수준’이 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가장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이슈는 과학기술을 잘 이해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과 기술을 두려워하고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불평등입니다.” 『열두 발자국』 p.270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기술 관련 직종이지만 사라지는 일자리는 단순 업무 관련 직종일 겁니다. 그러니 단순 업무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재취업을 하는 것이 어려운 일입니다. 기술을 잘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간에 ‘기술 계급 사회’를 형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모두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현재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점점 기술의 수명이 짧아지면서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만 하니까요. 배우지 못하면 따라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자신만의 삶의 지도를 만들어나가면서, 급변하는 세상의 변화를 바로 보고 그에 걸맞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육 또한 정해진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찾고 스스로 질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질문은 쉽게 나오지 않으니까요. 세상에는 정답이 없는 문제들이 정답이 있는 문제들보다 훨씬 많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위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