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집을 구하며 가장 중요했던 점은 채식주의 여부

인도에서 산다 #04

by 백두산



우리나라에서 집을 구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할 사항은 첫 번째로 보증금과 월세 혹은 전세금이 얼마인지와 집의 상태일 것이다. 두 번째로는 내 직장 혹은 학교와 지리적으로 얼마나 가까운지 조금 멀더라도 교통편이 얼마나 용이한지일 것이고, 세 번째로 주변 환경에 대한 부분들이 아닐까.




내가 인도에서 자리 잡은 지역은 인도 내에서도 시골지역이면서 여행지가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의 방문이 잦지 않은 지역이다.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있으면서 한편으론 선입견을 갖고 있으며 그로 인해 어느 지점에서는 거부감을 갖는다. 또한 채식주의자들이 거의 대부분이며, 일부 무슬림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은 고기를 먹지 않는 지역이다. 작은 동네이니 만큼 보는 눈이 많고, 호기심이 많으며, 말이 많은 곳이다. 우리는 모르지만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다.




집을 구하며 집주인들이 첫 번째로 물었던 질문이 채식주의자인지 여부였다. 집에서 육류를 요리하는 것은 물론이며, 사다가 먹는 것 또한 원치 않았다. 기숙사에 살지 않고 학교 밖에 집을 구하는 외국인들은 모두 집주인에게 채식주의자라고 이야기하거나, 집에서는 육식을 요리하거나 먹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집을 계약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만약 집에서 육류를 요리하면 옆집, 윗집 등에서 집주인에게 항의를 하는 일도 있다.




밖에서 혼자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이웃들과 교류하는 와중에 일어난다. 그들과 우리의 문화가 달라서 일어나는 일이 많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집에 허락을 받지 않으면 웬만하면 발은 들이지 않는데, 가끔 이웃집에서 불쑥 집안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쾌한 일이다. 특히,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서로에 대한 선을 지켜주는 것(예의범절)에 익숙한 나는 처음에 그런 일이 일어나면 상대에게 단호하게 거부의사를 밝히거나, 반복되면 화를 내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지켜오는 기본적인 행동 방식과 그들의 문화에서 그들이 지키는 행동 방식에는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느낀다. 이것은 좋다와 나쁘다 혹은 옳다와 그르다가 아닌 그저 다르다고 보인다. 그들의 행동 방식과 문화를 이해하고 나면, 그 행동에서의 의도를 알게 된다. 대부분 좋은(관심, 호의 등)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다. 단지 그런 의도를 표현하는 방식이 내가 익숙한 방식과는 좀 다를 수 있다.




우리 학교에는 외국인을 위한 반이 따로 있었다. 그래서 현지 인도 친구들과는 다른 교실에서 수업을 받았다. 우리 반에서 나와 함께 공부한 친구들은 나를 포함해서 총 8명이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네팔,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들이 있었고, 선배들 중에는 이탈리아, 스페인, 스위스, 미국, 스웨덴, 일본 등 다양한 나라에서 와서 아유르베다를 공부하고 있었다. 나 또한 외국인 친구들을 대하는데 마음속에 벽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깊은 교류를 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의 다른 삶의 모습과 생각을 조금씩은 엿볼 수 있었다. (이 부분은 다음에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머지않아 나는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됐다. 첫째,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둘째, 산스끄리뜨 어를 배우는데 뭐가 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셋째, 수업에서 영어와 산스끄리뜨 용어가 섞이면서 그나마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던 내용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었다. (지역어 구자라띠를 배워야 했던 건 이것에 비하면 큰 문제는 아니었으므로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내가 영어로 진행된 수업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이유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있었는데, 내 영어 실력이 부족한 것과 선생님의 발음이었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첫 6개월은 나에게 지옥 같은 시간들을 선물해 주었다. 수업 시간에 열심히 듣지만 수업 내용의 30%밖에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화가 나서 머리에서 김이 나오곤 했다. 다른 누구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서 굉장히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자괴감이 들었고, 우울한 마음도 들어서 수업을 빠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6개월이 지나면서 조금씩이지만 수업을 이해할 수 있었고, 주위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도움을 받으며 어찌어찌 가까스로 쫓아갈 수는 있었다.




학교 수업의 질이나 시스템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자면 생각했던 것보다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개강을 하고 한동안 특정 과목 선생님이 없어서 수업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고, 선생님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수업이 미루어지거나 취소되는 일도 많았다. 이런 일들로 학교에 항의를 하는 일도 많았지만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기도 했지만 환경만을 두고 따지자면 이상적인 환경은 아니었다. 부족한 부분은 혼자 공부해서 따라가야 했고, 선배들에게 물어보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유르베다를 배우려면 인도가 아니고는 이만한 환경조차 찾을 수 없기에 대부분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한다.




인도에서 생활하며 나는 인도의 시스템이 느슨하다고 느낀다. 좋은 말로 하면, 융통성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많은 일들이 정해진 기간 내에 처리되지 않았고, 실무자들도 그리 급하지 않다. 이렇게만 보면 모든 일들에 느슨해서 별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느슨하다가 어느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팽팽하게 당겨진 곳이 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말이다. 일단 그런 부분에 맞닥뜨리면, 사람들은 굉장히 단호하고 완고하며 원칙주의적인 자세를 취한다.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든다. “아니 지금까지 원칙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도대체 왜 이 부분에서만 이렇게 원칙을 따지는 거지?!”라는 생각이다. 벽에 부딪힌 것과 같은 기분이 들고 답답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 부분이 마지노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내 관점에서 볼 땐, 느슨한 부분과 팽팽한 부분이 별로 다르지 않은 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히 무엇이 마지노선을 만드는지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일단 그들이 원칙적으로 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면 따르는 수밖에는 별다른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한 번 두 번 이런 일들과 마주치다 보면,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그럭저럭 대처를 해나갈 수 있게 된다. 지금 내가 보는 지점과 다른 문화와 시각에서 보는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일단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비록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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