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알아? 나도 예술을 사랑했었어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는..

by 백두산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은 내가 미술을 했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이다. 내가 사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것을 즐겼었다고 이야기한다면 더더욱 믿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 가지 모두 어렸을 적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멈췄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림을 그릴 줄 모르고, 사람들 앞에서 절대 춤을 추지 못한다.



국민학교에 다닐 때 미술학원을 다녔다. 그때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좋았는지, 아니면 그냥 학원에 가면 해야 하니까 했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몇 년 동안 학원에 가서 그림을 그렸고,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기도 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나는 다시는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리지도, 붓을 들고 색을 칠하지도 않았다. 물론 학교에서 있는 미술 시간에는 했겠지만. 그때 엄마는 나에게 물으셨다. 왜 미술반에 들어가서 그림을 계속 그리지 않느냐고. 나는 뭐라 대답할지 몰라 "그냥 이제 하기 싫어졌어"라고 대답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렸다. 그리고 사실 나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말 그대로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다 대학을 진학하고 군대도 다녀오고 앞날에 대한 생각,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고, 어떤 일을, 어떤 삶을 살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들을 하게 됐다. 그렇게 하나하나 물어보고 생각해보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왜 미술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는지 알게 됐다. 나는 죄책감을 느꼈다. 미술 대회에 제출한 그림은 온전한 내 노력만으로 그려낸 것이 아니었기에 떳떳할 수 없었다. 누군가 그림에 대해 물어볼 때마다 죄책감을 느꼈고 마음에 상처가 되었다. 그럴 때마다 거짓말을 했고, 그 거짓말이 다시 내 마음에 상처를 남겼다. 그래서 나는 미술을 하지 않는 것으로 죄책감에서 그리고 그로부터 마음에 상처를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이따금씩 다시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들기도 했다. 가슴에 간직한 느낌을 목소리로 악기로 연필로 붓으로 색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련의 활동은 분명 내가 가진 마음의 결을 다채롭고 곱게 만들어줄 수 있다. 느끼는 감정을 생각을 꼭꼭 숨겨두는 것보다 표현하는 것이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도 더욱 좋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어둠에 빠져들 때마다, 바닥을 치는 감정의 기복을 겪을 때마다, 그렇게 나는 한 번씩 글로 열심히 적었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를.. 그러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곤 했다.



춤을 추지 않기 시작한 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내가 수치스럽다는 느낌을 느끼고 나서였다. 누군가 그런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주 간접적인 말들과 시선들이 나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도록 조금씩 도왔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춤을 추지 않았다. 지금은 춤을 춘다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어쩔 줄 몰라 시도도 하지 않는다. 그래도 가끔 머릿속으로 자유롭게 느끼고 움직이며 춤을 추는 자신을 상상해 보고는 한다.



[봄 말고 그림] 임지영 저.


이 책을 만나고 예술에 대한 나의 경험과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예술에 가까이 다가가 보고 싶은 마음이 슬며시 들어왔다. 물론 느낌이 들었다고 바로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 거리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과감한 결단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그래도 조금은 보고 느끼고 싶어 졌다. 그런 감정에 더욱 솔직해지고 싶다. 그것이 나의 삶을 좀 더 다채롭고 풍부하고 기쁘게 할 것 같다.


나는 내가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어떤 것들은 너무 잘 느끼고 그게 드러난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아리고 찡~ 하기도 한다. 화사해지기도 분노에 치를 떨고, 비판하고 논쟁하고 싶어 지기도 한다. 잘 표현하지는 못한다. 표현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잘 느끼는 것만큼 그것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이 책을 만나서 마음 한구석에서 꿈틀 되는 예술에 대한 감정을 만났다. 참 고맙고 소중한 경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