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랑, 만남, 이별
2009년 인도 어학연수를 시작으로 나는 인도에서나 한국에서나 머지않아 떠날 사람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인도에서는 언젠가 공부를 마치면 모국으로 돌아갈 사람이고, 한국에서는 다시 공부하러 인도로 떠날 사람이다. 그래서 언제나 사람을 만나고 인연을 맺을 때면 끝을 혹은 이별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만난다. 물론 우리는 모두 만나고 그리고 언젠가 헤어진다. 그럼에도 짧은 기간 안에 떠날 것을 알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특히나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후라면 더 그렇다. 10년을 곧 떠날 사람의 마음가짐으로 살아왔지만 그래도 이별에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 번 아쉽고, 때로는 슬프고 뭉클한 감정이 든다. 좋은 인연일수록 그 감정은 강하게 남는다.
내가 떠날 때 그리고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조금은 다르지만 비슷한 감정적 경험을 한다. 지난 몇 주간 3 개월 과정에서 공부하던 외국인 친구들이 공부를 마치고 거의 모두가 이곳을 떠나갔다. 10명 남짓한 친구들이 지난 3 개월을 이곳에서 공부했고, 이들 중에는 매일 진행되는 스터디 서클(그룹 스터디) 모임에도 꾸준히 참석했다. 그렇게 몇몇과는 짧은 기간에 꽤나 좋은 친구가 되었다. 그렇지 않더라도 한 명 한 명 친구들이 떠나는 것을 보며 인사를 하고 손을 흔들 때면 아쉽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그렇게 약간씩 서운하고 슬픈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적어도 1년 이상은 더 이곳에서 함께 지낼 줄 알았던 친구가 며칠 뒤에 떠난다는 이야기를 했고,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이유를 물었지만 그 이유조차도 왠지 잘 설득이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더 이상 무어라 이야기할 입장은 아니기에 그렇게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일요일 우리는 함께 모여서 음식을 나눴다. 벌써 많이 서운한지 눈물을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당사자는 이미 눈에서 눈물을 한 방울 두 방울 흘리고 있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건 불과 2 개월 남짓이지만 그녀가 이곳에서 생활한 기간은 벌써 4년이 훌쩍 넘었다. 그간 함께 지내온 친구들과 이별을 한다는 것은 분명 많이 아쉽고 슬픈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만큼 그녀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었다. 항상 다른 이들을 도와주고 모두가 모이는 자리에는 음식을 정성스럽게 장만하고,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주선하는 것도 주로 그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모인다. 활기차고 밝은 사람이다.
그녀와 그녀의 딸이 떠났다. 그리고 이곳에는 여전히 그녀의 남편이 남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둘은 이별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전해 듣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오랜 기간을 함께 하면서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헤어짐을 선택했다. 이 일로 내 지난날의 기억들과 감정들이 함께 올라오는 바람에 나는 그 날 하루 슬픈 감정에 휩싸여서 보내야만 했다. 떠나는 이의 마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을 나는 왠지 모두 알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 감정을 내 나름대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없이 우울한 하루를 보냈다.
웬일인지 아주 오랜만에 지난날의 나와 그 날의 감정이 떠올랐다. 중학교 졸업식날 아버지와 별거를 시작한 어머니를 따라 수원에 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길에 기차 안에서 펑펑 울었던 기억,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느꼈던 그녀와 3년 반의 만남을 뒤로하고 헤어지던 기억,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이 있는 것처럼 공허함이 밀려와 잠 못 이루던 날들의 기억, 불안하고 슬픈 날들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오며 그날의 느낌도 함께 왔다. 이제는 아련한 옛 기억과 느낌이지만 여전히 아픈 건 아픈 거다.
세상은 여전히 나같이 겁쟁이에게는 무섭고 낯설고 두려운 것들 투성이지만, 나는 계속 알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배우고 싶다. 또한 좋은 사람들과 사랑이 삶을 더욱 충만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사람과 사랑은 나에게는 항상 어렵고 어려운 문제다. 물론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하지만 사람과 사랑이 없는 삶 또한 상상할 수 없다. 그렇기에 계속 이해하고 알아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할 수 없다.
이곳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먼 타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녀와 이곳에서 계속 공부를 이어나가는 그에게 그리고 그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작은 친구, 모두에게 무한한 응원과 지지를 보낸다.
삶을 대단히 거창하게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내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성취이고, 그 안에서 조금씩 나아지려는 작은 노력들에 작지 않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 죽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