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Oct 24. 2017

합덕성당

삶은 사람의 길이다. 

몸이 받쳐주는 이상 사람은 항상 어딘가로 걸어간다. 목적이 있어서 걸어가는 사람이 있고 목적이 없이 걸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 길에 이름을 붙이면 순례가 되는 것이고 새가 하늘의 길을 모두 알고 날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사람 역시 걸어간다. 때론 잘못 들어선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잘못된 길은 없다. 그냥 서로 다른 길이 있을 뿐이다. 개인의 삶과 가치관에 따라 길을 찾아가는 짦지 않는 여정이 있을 뿐이다. 


국토순례, 전적지 순례, 불교성지 순례도 있지만 보통 순례(Pilgrimage)는 그리스도교에서 성인의 성소나 거룩한 장소를 찾아가는 일로 여겨진다. 당진의 순례길에서 만나는 합덕성당은 순례길 여정의 한 곳이다. 

약 2000여년전에 순례를 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순례라고 하는 것은 사실 생산적인 것은 아니다. 무언가의 깨달음이나 무언가를 얻기보다는 마음의 안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자들의 입장을 보면 1530년에 작성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의 문서에는 순례 행위를 '유치하고 무익한 일'로 묘사하기도 했다. 

합덕성당은 1890년에 건립된 성당으로 초대본당주임 퀴를리에(Curlier, J. J. L.)신부가 1899년 현 위치에 120평의 대지를 매입, 한옥성당을 건축하였다. 충남의 고딕성당을 대표하는 합덕성당은 전주의 전동성당 못지 않은 디테일이 있는 건물이다. 1866년 병인박해 때 다블뤼(Daveluy, M. A. N.)주교를 비롯한 여러 선교사들이 체포되기 전 피신하였던 곳이 현 구합덕성당의 신리공소(新里公所)로, 당시의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성당의 입지와 사찰의 입지는 상대적이라고 생각될만큼 다르다. 주로 산의 계곡이나 깊숙한 곳에 둥지를 틀은 사찰과 어디서든지 쉽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성당은 종교의 차이만큼이나 극명하게 드러난다. 쌀의 땅이라고 부를만큼 기름진 쌀이 나오는 당진은 높은 산은 불구하고 지평선이 보일만큼 평야가 넓게 펼쳐지는 곳이라서 그런지 합덕성당은 금방 눈에 띄인다. 

당진의 대표 여행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합덕성당과 합덕제를 잇는 공간에 공원 및 볼거리가 한창 조성중이었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악이 없는 세상은 인간이 없는 세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있기에 악도 존재하는 것이다. 이성적인 존재는 자신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데 좋은 행동도 할 수 있지만 동시에 나쁜 행동도 할 수 있다. 세상이 좋은 것으로만 가득차 있다면 그곳에서의 선은 위대하다고 보기 힘들 것이다. 악이 존재하는 곳에서의 선은 존재하지 않은 곳의 선보다 위대하다. 

합덕성당 같은 곳을 오면 삶의 목적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되는 듯 하다. 플라톤의 기록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변론에 따라 무지의 삶을 지향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도덕적인 삶을 고찰했는데 그가 생각한 올바른 일은 그 일을 한 뒤에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을 의미했다. 편안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합덕성당은 가톨릭 선교의 중심지이기도 하지만 알아가는 지식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금강미술대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