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하루, 다른 인생

AI 시대, 시간의 밀도가 인생을 바꾸게 될 것이다.

필자와 가까운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시간에 대한 개념이다. 시간은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것을 보고 시간을 최대한 같이 보내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단순히 1초, 1분, 1시간으로 그 시간을 느끼는 체감도를 말할 수가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특허청에 근무할 때 시간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당시 전세계의 기차들은 도시들마다 각기 다른 시간에 맞춰서 운행이 되었다. 도시마다 다른 시간개념은 큰 문제가 되었다. 오늘날 시차라던가 전세계 도시마다 정해진 시간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인슈타인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질문을 던졌다.시간은 정말 모든 곳에서 같은 속도로 흐르는 것일까.

그가 제시한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속도와 중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었다.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에서는 시간이 더 느리게 흐르고, 강한 중력이 작용하는 곳에서도 시간의 흐름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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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시간이라는 개념이 사실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물리학의 세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미 일상 속에서 이 사실을 경험하고 있다.사람마다 뇌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이나 축적된 지식등에 따라 생각의 속도가 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시간의 가치는 모두 다르다. 1시간에 정해진 최저임금이 있지만 최저임금만 받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보다 두배, 다섯배, 열배, 수십배를 받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적은 돈을 버는 사람의 시간은 무의미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의 총량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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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가지만, 지루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의 한 시간은 유난히 길게 느껴진다. 같은 60분이라는 시간이지만 어떤 순간에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떤 순간에는 끝없이 늘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즉 인간에게 시간은 단순한 물리적 단위가 아니라 체감되는 경험의 밀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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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최근에 그린 그림 두개를 가지고 AI를 통해 분위기를 바꾸어보았다. 시간이라는 것을 바라보고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여진다.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분위기의 그림을 만들어낼 수가 있다. 물론 기본은 인간에게서 출발한다. 기본이 확장될 여력을 가지는 것은 사람의 역량이지만 이제는 AI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변화를 마주하고 있다. AI라는 도구의 등장이다. AI는 인간의 시간 개념을 또 다른 방식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몇 시간 혹은 며칠이 걸리던 작업들이 이제는 몇 초 안에 처리되기도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하루가 여전히 24시간이지만, AI를 활용하는 사람에게는 그 하루가 훨씬 더 많은 일을 담아낼 수 있는 시간으로 확장되기도 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밀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예전에는 시간의 힘을 더 강력하게 주어지게 한 것이 특정한 학벌이나 직장 혹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똑같은 시간이지만 특정한 그들의 조건에 부합할 경우에만 기회가 주어졌다. 공정이라는 모호한 기준아래 많은 사람들이 그 벽에 부딪치기도 했으며 그걸 넘어서기 위한 시험인 사법시헙이 유일한 길처럼 생각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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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임금, 삶의 무게는 모두 연결이 되어 있다.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는 인간이 처음으로 시간의 체감뿐만 아니라 시간의 생산성 자체까지도 다르게 만들어내는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지만은 않다.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가 아니라 같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시간을 얼마나 많이 투입했는지가 중요했다. 공장에서 기계를 돌리고 물건을 생산하던 시대에는 노동시간이 곧 생산량과 어느 정도 비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 8시간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졌고, 시간은 곧 임금의 기준이 되었다.


AI 시대는 이 오래된 기준을 흔들기 시작하고 있다. 같은 한 시간을 사용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AI와 함께 수십 시간의 일을 해내고, 어떤 사람은 여전히 한 시간의 노동을 그대로 소비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생산성을 가진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는 처음으로 시간의 총량이 아니라 시간의 확장 능력이 중요한 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에는 특정한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직장에 들어갔는지, 혹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지가 시간의 가치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하루를 살아도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집중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AI는 이 구조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지식과 정보, 그리고 도구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시간을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또 다른 격차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과거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의 가치가 재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설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어떤 사람은 하루 24시간을 살아가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24시간을 통해 100시간에 가까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AI는 인간에게 더 많은 시간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완전히 다른 밀도로 만들 수 있는 도구가 되고 있다. 그래서 AI 시대에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더욱 분명해진다.


우리는 시간을 소비하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시간을 확장하며 살아갈 것인가.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단순히 시간이 얼마나 주어졌는가의 문제가 아니다. 같은 24시간이 주어지더라도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 AI는 인간에게 새로운 시간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같은 시간을 전혀 다른 밀도로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어쩌면 앞으로의 시대는 시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시간을 얼마나 확장할 수 있는가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이글에서 철학적으로 비유한 이론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Relativity), 심리적 시간 (Psychological Time), 시간-임금 교환 이론 (Labor Economics), 생산성 혁명 (Productivity Theory)등이 활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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