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우리는 흔히 삶을 하나의 선으로 이해한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선택하면서 그 선택의 결과로 지금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은 늘 개인적이면서 사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자신이 선택했고, 자신이 걸어왔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고 믿는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우리는 혼자 살아온 것일까. 양자역학에는 ‘양자 얽힘’이라는 개념이 있다. 최근 미래 전략기술로 꼽히는 양자컴퓨터와 양자통신의 기초 아이디어를 개척한 과학자들이 올해 '튜링상'을 수상했다.
서로 한 번 연결된 두 입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이야기다. 물리학의 영역에서 설명되는 현상이지만 그 구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상하게도 인간의 삶과 닮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스쳐 지나간 인연, 짧은 대화, 오래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던 장면들이 어느 순간 우리의 선택을 바꾸고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삶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인데도 그 영향은 계속 남아 있다. 어쩌면 사람도 서로 얽혀 있는 존재인지 모른다. 한 번의 만남이 하나의 문장이 어떤 선택의 순간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현재에 영향을 준다.
우리는 그것을 기억이라고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사라지지 않는 연결일지도 모른다. 시간 속에 저장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에 가깝다. 우리는 공간에 머무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공간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흐르는 시간에 머물게 된다. 누군가와 나눈 대화, 함께 보낸 시간 속에 같은 장소에서 느꼈던 감정은 모두 다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선으로 이어져 지금의 나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삶은 직선이 아니다. 어디서 시작해서 어디로 가는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수많은 관계와 경험이 얽혀 만들어진 하나의 구조에 가깝다.
그 구조 안에서 우리는 움직이고 때로는 방향을 바꾸고 때로는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된다. 때론 우리는 그것을 ‘운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운명은 이미 정해진 길이라기보다 서로 얽혀 있는 수많은 관계와 경험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흐름에 가깝지 않을까. 그래서 변화도 혼자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변화는 내 안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미 오래전에 만났던 사람과 그때 들었던 말, 그 순간 느꼈던 감정. 그 모든 것이 겹쳐지면서 어느 시점에서 드러나는 것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한 번도 완전히 혼자였던 적이 없다. 누군가의 말이 나를 움직였고 어떤 경험이 나를 바꾸었고 보이지 않는 연결이 나를 지금까지 이끌어왔다. 그 연결은 끊어진 적이 없다. 다만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래서 삶은 외로운 것이 아니라 복잡한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서로를 떠나보내기도 하고 잊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없다.
어떤 형태로든 어떤 방식으로든 그 영향은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영향은 언젠가 다시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양자 얽힘이 말하는 것은 물리적인 현상일 뿐이지만 그 개념을 통해 우리는 하나의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보이지 않게 연결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가능성속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인지도 모른다.
어떤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느냐인지도 삶은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연결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연결이 만들어내는 흐름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변화해 간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다만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갈 뿐이다. 삶은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연결 속에서 형성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시간을 통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며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과거를 떠나보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쌓이며 살아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