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릇의 국수에서 시작된 제천여행

제천의 칠성봉 독송정, 성봉, 연소봉, 요미봉, 자미봉, 아후봉, 정봉산

제천이라는 도시는 일제강점기에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의 위기를 겪은 도시이기도 하다. 1895년에 의병을 일으킨 의암 유인석의 제천의병 지휘부가 제천의 중심인 아후봉에 설치가 된 적이 있었다. 이때 일본군의 방화로 인해 부근이 모두 전소되었고 의병 항쟁이 지속되자 본보기 삼아서 전면적인 방화로 인해 다른 도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철저히 파괴되었다고 한다. 제천은 사실상 지도상에서 사라진 도시가 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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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 보면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선택 하나가 하루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제천을 방문한 날도 그랬다. 제천의 한 골목을 걷다가 ‘착한 가격’이라는 문구가 붙은 국숫집을 발견했다. 특별할 것 없는 간판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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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듯한 느낌의 음식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소박한 공간과 함께 익숙한 냄새가 먼저 맞이했다. 메뉴는 단순했고 가격은 부담이 없었다. 이런 곳에서는 괜히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 한 그릇의 국수는 그 자체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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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시간을 지나 방문해서 그런지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주문하고 기다리다 보니 뜨끈한 국수가 나왔다. 국물은 자극적이지 않았고, 면은 부드럽게 넘어갔다. 특별히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 기억에 남는 맛이었다.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종종 그 도시의 성격을 닮는다. 제천의 국수는 그랬다. 과하지 않고, 담백하고,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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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음식점의 반찬은 두 개가 나왔는데 적당하게 익은 김치와 무생채가 같이 나왔는데 자극적이지 않은 그런 맛이었다. 무생채는 그냥 잔치국수에 넣어서 먹으면 그만이다. 국물은 멸치육수가 아니라 마치 뼈를 우려낸듯한 느낌의 진한 맛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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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릇을 비우고 나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가볍게 발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이 바로 제천의 중심에 자리한 중앙공원이었다. 도시의 중심에 남아 있는 중앙공원은 이름처럼 제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공원은 사람들이 오가고, 잠시 머물고, 다시 흩어지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은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이 도시가 지나온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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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안을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선이 닿는 곳이 있다. 바로 칠성봉이다. 칠성봉, 제천을 바라보는 자리에 자리하고 있었다. 칠성봉은 높지 않은 봉우리지만 제천에서는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오르면 도시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높이보다 중요한 것은 시선이다. 도시를 위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단순히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흐름을 읽는 일에 가깝다. 건물과 길, 사람들의 움직임이 하나의 그림처럼 이어진다.


칠성봉이라는 이름은 북두칠성을 떠올리게 한다. 옛사람들에게 별은 방향이었고 기준이었다. 그래서인지 이곳에 서 있으면 단순한 전망 이상의 의미가 느껴진다. 마치 이 도시의 시간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자리처럼 한 그릇의 국수와 하나의 도시, 생각해 보면 여행은 늘 거창한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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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제천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들어간 국숫집에서 먹은 소박한 한 그릇의 음식과 그 이후에 이어진 발걸음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하나의 기억이 되었다. 중앙공원에서 바라본 제천은 조용했지만 분명한 흐름을 가지고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들 사이에서 제천은 조금 다른 속도로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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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 기억에 남는 것은 의외로 단순하다. 화려한 관광지보다 오래된 식당, 크고 유명한 건물보다 잠시 머물렀던 공간을 방문했던 제천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가 됐다. 착한 가격의 국수 한 그릇에서 시작된 시간은 중앙공원을 지나 칠성봉 위에서 하나의 흐름처럼 걸어 다녀보았다. 그리고 그 시간은 지금도 여전히 기억 속에서 조용히 여백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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