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어떤 것까지 살까?

돈은 시간을 살 수 있지만, 시간의 의미까지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언제 삶을 마감할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사람에게는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시간을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을 노동소득이라고 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자신의 시간을 들여서 벌 수 있는 노동소득은 풀린 돈으로 인한 자본소득을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가치가 낮아졌다. 이제 과거에는 생각하지도 못할 것들도 돈을 들여서 살 수 있는 시대다. 사실 과거와 다를 것은 없다. 돈을 벌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누군가의 시간을 저렴하게 사서 돈을 버는 것이다. 과거 노비들이 자산으로 취급되었고 양반들의 부를 만들어주는 수단이 된 것도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는 없다고 말이다.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요즘 시대를 보면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거래 만능시대에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사업, 항공사의 패스트트랙, 원하는 것을 대신해주는 대행 서비스, 그리고 웃돈을 주고 구하는 암표까지 이 모든 것은 결국 하나로 연결된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사용하는 방식은 점점 더 불공평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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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서비스는 도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공정을 이야기하지만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돈으로 가능한 거래 만능 시대를 살고 있다. 이 시대에 줄 서기의 도덕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암표는 불법이지만 비슷해 보이는 대신 줄 서기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결국 돈으로 시간을 사는 것은 일상화되어 있다.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에게 시간은 가장 공평하면서도 가장 불공평한 자원이다.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전혀 다르다. 어떤 사람은 줄을 서며 시간을 보내고 어떤 사람은 돈을 지불하고 그 시간을 건너뛰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던가 생산단가가 높은 자신의 주업에 종사하면 된다. 그 차이는 단순한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다. 삶의 밀도를 바꾸는 선택이다. 시장지상주의는 이 지점을 정확히 파고든다. 시간을 돈으로 환산하고 그 시간을 다시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한다.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이 있지만 우리는 시간을 ‘사는 것’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누군가는 대신 줄을 서주고, 누군가는 대신 일을 해주며, 누군가는 대신 선택까지 내려준다. 그리고 이 흐름의 끝에는

AI가 있다. AI는 인간의 시간을 가장 빠르게 압축하는 도구다. 앞으로 5년 내에 개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더 불공평하게 적용이 될 것이다. 분명히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만큼만 활용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확장하는 효과를 누릴 수가 있고 이는 빈부의 격차를 더 벌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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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하던 시간을 줄이고 생각하던 시간을 줄이고 심지어 판단하는 시간까지 줄여준다. 이전에는 돈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시간의 단축’이 이제는 기술을 통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시간을 절약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간을 소비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시간을 아낀다는 것은 분명히 장점이 있다. 빠르게 이동하는 대신 풍경을 놓치게 되며 결정을 맡기는 대신 생각하는 과정을 줄이게 된다.


시간은 단순히 줄여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어떤 시간은 낭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 의미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시장지상주의는 시간을 효율로만 바라보지만 인간은 시간을 기억으로 살아간다. 돈은 시간을 사게 해 준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까지 대신 결정해주지는 않는다. AI는 시간을 줄여준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큰 사고를 내던가 잘못을 저질러도 변호사를 사서 대리 사과를 하고 합의를 이룰 수 있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결혼식에서 받은 비싼 식사권을 중고거래앱에 올려서 파는 사람도 있다. 시장경제에서 시장은 재화를 생산하고 부를 창출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고착되었고 시장사회는 시장가치가 인간 활동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어 간 일종의 생활방식으로 바뀌었다.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 시대에 도덕은 어디까지 역할을 할 수가 있을까.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확보했느냐가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선택했느냐이다. 돈으로 줄을 서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줄을 서며 만들어졌을지도 모르는 기억까지 함께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돈과 기술로 사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시간 속에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남길 것인지는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의 본격적인 등장과 더불어 개개인에게 부여된 시간의 가치는 더 많은 차이를 만들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노동소득은 더 가벼워질 것이고 자본 + AI기반의 소득은 더 빨리 불어나게 될 것이다.


“시간을 줄인 이후,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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