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천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남는 방식으로 기억되는 여행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꽃이 피고 온도가 변하면서 새로운 계절이 오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기에 봄은 늘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장 먼저 가지 끝에 닿고, 그다음 사람들의 시선에 닿는다. 3월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날 광천으로 향하던 날도 그랬다. 아직 완전히 만개하지는 않았지만, 꽃은 이미 계절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금 흐릿한 배경 위에 또렷하게 떠 있는 꽃잎처럼, 봄은 언제나 먼저 도착해 있다. 광천터미널 근처로 들어서자 공간의 결이 천천히 바뀌기 시작하고 있다. 곳곳에 자리한 간판은 빛이 바랜 채 남아 있고 천막은 바람에 흔들리며 낮은 목소리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시장이라는 공간은 늘 그렇다. 필요한 것만 사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와 사람의 표정을 함께 가져가는 곳이다. 광천김과 새우젓으로 유서 깊은 광천전통시장, 사계절 자연의 변화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길을 걷다보면 나름의 투어를 완성해볼 수가 있다.
올해도 벌써 1/4이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점점 빨리 지나가는대신에 무얼 느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오래된 식당으로 들어가본다. 이곳은 정육점이면서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기도 하다.
안쪽으로 들어가서 앉으니 � 드라마 속 공간, 현실이 되는 순간이 느껴진다. 시장 한쪽에 자리한 오래된 식당에서 익숙한 느낌이 스친다. 드라마 무빙의 한 장면이 떠오르는 공간이다. 카메라가 머물렀던 자리와 인물들이 앉아 있던 테이블과 그리고 창밖으로 스며들던 빛까지 보인다.
하지만 막상 그 자리에 앉아보면 이곳은 촬영지가 아니라 그저 오랜 시간 사람들의 식사를 받아낸 공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의 진짜 이야기는 드라마가 아니라 매일 반복되었던 식사의 시간 속에 있다.
� 한 그릇의 온기다 담긴 육개장이 나왔다. 붉은 국물 위로 김이 올라오고 그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담겨 있다. 한 숟갈을 뜨면 자극적이기보다는 익숙한 맛이 먼저 느껴진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은 먹어봤을 것 같은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맛. 시장 안에서 먹는 음식은 늘 그렇다. 특별해서가 아니라 지나온 시간이 함께 들어 있기 때문에 깊어진다.
광천의 거리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래서 더 오래 남게 된다. 바랜 간판, 복잡하게 얽힌 전선, 그리고 아직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점들. 이곳은 변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천천히 변해온 공간이다. 그래서 더 자연스럽다.
� 봄은 그렇게 남기에 다시 벚꽃을 떠올리게 된다. 처음에는 그저 ‘보이는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것은 ‘남는 것’으로 바뀐다. 광천에서의 하루도 그렇다. 시장, 식당, 거리, 그리고 한 그릇의 육개장까지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장면이 아니라 조금씩 겹쳐지는 기억의 모양으로 남는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날의 이야기와
그날의 봄기운
그곳에서의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