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AI

생각하지 않는 AI, 생각하는 인간은 어떻게 변할까

사람이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은 어느 때일까. 철학자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구처럼 과연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것일까. 1935년에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에르빈 슈뢰딩거가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보이기 위해서 고안한 사고 실험 슈레딩거의 고양이처럼 확인하는 순간 결정이 되는 것일까. 사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기준이라는 것은 매우 모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생각할 수 있기에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스마트폰이 모든 사람의 손에 들리면서 이제 기억을 하던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다. 과거에는 생각했어야 할 것도 이제는 스마트폰에 의지하면서 더 단순해진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이상한 시대를 살고 있다. 생각하지 않는 존재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고 정작 인간은 점점 생각하지 않게 된다. 사실 AI는 생각하지 않는다. 방대한 데이터를 계산하고 패턴을 찾고 확률적으로 가장 적절한 답을 꺼낼 뿐이다.


그 안에는 의도도 없고 고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AI를 보며 말한다. “생각을 잘한다.” 여기서 균열이 시작된다. 인간이 생각한다는 것은 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틀릴 가능성을 감수하는 과정에 가깝다. 불확실한 상태에서 방향을 정하고 그 결과를 감당하는 것이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과정이다. 그게 생각이다. 하지만 AI는 그 과정을 건너뛴다.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 위에서 가장 무난한 답을 선택한다. 그래서 빠르고 그래서 편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은 생각을 멈춘다.


우리는 점점 생각하는 대신 “선택”만 하면서 살아간다. AI가 만들어준 답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방식으로 이 변화는 작아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다르다. 과거의 인간은 생각 → 선택을 했다면 지금의 인간은 제안 → 선택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는 아마 이렇게 될 것이다. 제안 → 자동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 인간은 무엇을 하게 될까.


생각은 점점 비용이 높은 행동이 된다. 시간이 들고 에너지가 필요하며 실패의 가능성까지 감수해야 한다. 반면 AI는 거의 공짜에 가깝다. 빠르고 정확하며 대부분의 상황에서 충분히 쓸 만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은 생각하지 않게 된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로 그 지점에서 “생각하는 인간”의 가치는 더 커진다.


모두가 비슷한 답을 쓰는 시대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드물어진다. 모두가 빠르게 결과를 내는 시대에는 천천히 구조를 보는 사람이 사라진다. AI는 답을 만들어서 준다. 하지만 질문은 만들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항상 답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왜? 가 중요하다. 그래서 앞으로의 인간은 두 가지로 나뉠 것이다. AI를 사용하는 사람과 AI에 의존하는 사람으로 말이다. 둘의 차이는 단순하다.


생각을 위임했는가, 아니면 활용했는가이다. 생각을 위임하는 순간 인간은 점점 ‘선택하는 존재’로 축소된다. 투자 관련 사기를 당하는 사람의 특징은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누군가가 생각하고 선택해 주기를 바라고 그 길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생각의 역설시대가 도래하게 되면 사람마다 차이는 더욱더 극명해질 것이다. 하지만 생각을 유지하는 사람은 AI를 도구로 사용하면서도 방향을 결정하는 존재로 남는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생각하고 있는가 아니면 생각을 대신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앞으로 인간의 격차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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