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의 역설

노력은 바깥에서 평가받고, 관계는 안에서 유지된다.

노력이라는 것은 사람마다 모두 기준이 다르다. 그렇지만 시험이나 특정 학벌, 자격에 대해서는 조금은 공정하게 평가받으리라는 암묵적인 동의는 있다. 사실 노력은 한 가지 잣대로 평가를 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노력하면 보상받아야 한다고 믿으면서 살아간다. 분명히 자신의 노력은 관계나 금전적으로 피드백을 받아야 된다고 살아간다.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다. 그 믿음은 틀리지 않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그 보상을 어디에서 받으려 하느냐다.


우리는 종종 이상한 선택을 한다. 자신의 삶에서 만들어낸 성과를 정작 그 성과가 만들어진 자리에서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인정받으려 한다. 가까운 사람은 그걸 인정해기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감정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구조가 뒤틀려 있다. 노력은 원래 ‘대상’이 있다. 일을 했다면 시장에서 평가받아야 하고 가치를 만들었다면 사회에서 보상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쉽지 않다. 성과는 늦게 오고, 인정은 불확실하며 보상은 생각보다 적게 돌아온다.


자신의 생각보다 더 늦게 돌아오던가 기약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방향을 바꾼다. 시장 대신 관계나 성과 대신 감정으로 말이다. 그래서 생겨나는 말이 있다. “나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 이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요구다. 그리고 그 요구의 대상은 대부분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자신이 어떤 학벌을 가졌든 간에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했든 간에 그건 오로지 자신을 위해서 인 것이지 그걸 누군가에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배우자, 가족, 연인에게 왜 그건 노력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그것이 당연한 것인지는 말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다. 자신의 노력은 사회를 향해 있었는데 보상은 관계에서 받으려 한다. 이것이 노력의 역설이다. 노력은 바깥을 향해 있었지만 보상은 안쪽으로 끌어오려 한다. 그 결과는 대부분 비슷하다. 상대는 이해하지 못하고 본인은 인정받지 못했다고 느낀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노력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는 ‘성과를 위한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인정을 위한 노력’이다. 문제는 이 둘이 섞일 때 발생한다.


성과를 만들기 위해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인정받기 위한 행동으로 바뀌고 결국 그 인정이 채워지지 않으면 노력 자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러려고 지금까지 기다렸나 혹은 왜 그 과정을 이렇게 헐값으로 취급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인정은 보상의 형태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부산물이다.


억지로 요구하는 순간 이미 그 성격은 바뀌어버린다. 관계는 평가의 장소가 아니다. 누군가를 채점하는 공간이 아니라 그저 함께 머무는 공간에 가깝다. 그곳에서 보상을 요구하는 순간 관계는 구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떤 노력은 아무리 많이 해도 돌아오지 않는다.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노력은 그것이 향한 곳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일은 시장에서, 성과는 결과로, 가치는 시간 위에서 그리고 관계는 그 모든 것과는 다른 층위에 놓여 있어야 한다. 노력의 역설은 우리가 충분히 애쓰지 않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애썼기 때문에 생긴다. 다만 그 노력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갔을 뿐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 노력은 그냥 그 자체일 뿐이다. 누군가가 그 가치를 대우해 주고 대접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한다. 나는 얼마나 노력했는가가 아니라 그 노력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를 알아야 한다. 노력은 양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방향으로 결정된다. 누구도 필요하지 않을 것들을 ㄹ위해 같은 시간을 들였다고 해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같은 노력을 했다고 해서 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차이는 결국 노력이 향하고 있던 ‘대상’에서 만들어진다. 누군가는 시장을 향해 노력하고 누군가는 관계를 향해 노력한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을 향해 노력한다. 이 셋은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결과를 만든다. 시장으로 향한 노력은 결과로 돌아오고 관계를 향한 노력은 감정으로 남으며 자신을 향한 노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조가 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 가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래서 시장에서 해야 할 노력을 관계에서 증명하려 하고 자신을 위한 선택을 타인의 인정으로 확인받으려 한다.


그 순간 노력은 더 이상 축적되지 않는다. 소모되기 시작한다. 노력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흘러가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어디로 흘러가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완전히 달라진다.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간 노력은 결국 아무 곳에도 닿지 못한다. 그리고 그때 사람은 노력이 배신당했다고 느낀다. 하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다만 그 노력을 잘못된 곳에 맡겨왔을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노력의 크기가 아니라 그 노력을 맡길 곳이다. 관계는 보상을 주는 곳이 아니다.


시장도 감정을 책임지지 않는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 이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 노력은 왜곡된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 하나다. 나는 지금 어디를 향해 노력하고 있는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선명해지는 순간 노력은 더 이상 증명해야 할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쌓이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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