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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29. 2017

국수

소박하지만 정감 있는 음식

전주는 맛있는 음식점이 많기로 유명하지만 속살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제대로 된 맛을 보기가 쉽지가 않다. 전주에 담백하기로 유명한 한 국숫집을 찾았다. 국수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 중국,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에서 많이 접하는 서민음식으로 선조들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우리 곁에서 함께 해온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친근하지만 어떻게 보면 제대로 만들기 쉽지 않은 음식 국수는 백석이라는 시인이 작품으로 남긴 바 있다. 


백석의 시 국수에서 보면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궁핍한 생활상이 반영되어 있다. 공동체와 사람들의 연대감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라던가 삶의 정서를 드러냈던 백석의 시에서는 국수가 무엇인가를 다시 되묻고 있다. 이제 조선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앞서서 우리 유산과 자산을 팔고 그 흔적을 없애버린 36년 동안 백석은 우리 민족의 정서적 자산을 유지하기 위한 시를 썼다. 

국수라는 것이 사실 별거 없다. 육수가 가장 큰 매력을 가졌지만 여전히 담백함이 가장 큰 무기다. 특히 이 집의 국수는 너무나 담백해서 오히려 심심하다. 위에 얹어진 당근과 애호박, 고춧가루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물 맛은 또한 어떠한가. 멸치육수라고 할지라도 너무 담백하고 뼈를 조금이라도 우려 넣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렇지만 한 젓가락을 하고 대접을 잡고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면 아~ 국수의 매력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 

냉면·더운 국수·회국수·비빔국수·칼국수·쟁반국수·볶음국수 등을 모두 국수라고 부르지만 보통은 잔치국수를 국수라고 생각한다. 그것도 하얀색의 소면으로 삶아낸 국수가락이 담긴 국수가 제대로 된 국수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혼례식에서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가장 서민적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혹시나 모자랄까봐 주는지는 몰라도 국수와 함께 나오는 두 덩어리의 소면이 한 그릇으로 배고플지 모른다는 염려를 한순간에 날려주기까지 한다. 특히 같이 나오는 청양고추는 담백해서 심심하기까지 한 국수와 너무 잘 어울린다. 조선시대의 요 리서 인 음식디미방에서는 "달걀을 밀가루에 섞어 반죽하여 칼국수로 하여 꿩고기 삶은 즙에 말아서 쓴다 [暖麵法]"고 했다.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나서 추가로 먹는 국수 맛도 여전하다. 이제야 비로소 이곳의 맛을 느끼게 해준다. 국수는 한자리에서 두 번 먹어야 제 맛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지금도 유효하긴 하지만 한 때 짬뽕 열풍이 불기도 했다. 짬뽕은 그냥 한때 지나가는 바람이라면 국수는 선선히 불어오는 맛의 하늘 바람 같다. 여전히 당기고 여전히 생각이 난다. 

한 그릇 잘 비워보았다. 국수를 먹으려면 밑바닥을 보아야 제맛이다. 국수만으로 무언가 허전함을 달래는 것이 육수이기 때문이다. 잘게 끊어지는 소면의 보드라움과 국물의 담백함이 같이 하모니를 이루어 배속으로 들어간다. 


- 백석 국수 - 

눈이 많이 와서

산엣새가 벌로 나려 먹이고

눈구덩이에 토끼가 더러 빠지기도 하면

마을에는 그 무슨 반가운 것이 오는가 보다.

한가한 애동들은 어둡도록 꿩사냥을 하고

가난한 엄매는 밤중에 김치가재미로 가고

마을을 구수한 즐거움에 사서 은근하니 흥성흥성 들뜨게 하며

이것은 오는 것이다

이것은 어늬 양지귀 혹은 능달쪽 외따른 산 옆 은댕이 예데가리밭에서

하로밤 뽀오햔 흰 김 속에 접시귀 소기름 불이 뿌우현 부엌에

산멍에 같은 분틀을 타고 오는 것이다.

이것은 아득한 녯날 한가하고 즐겁든 세월로부터

실 같은 봄비 속을 타는 듯한 녀름볕 속을 지나서 들쿠레한 구시월 갈바람 속을 지나서

대대로 나며 죽으며 죽으며 나며 하는 이 마을 사람들의 으젓한 마음을 지나서 ㉤텁텁한 꿈을 지나서

지붕에 마당에 우물둔덩에 함박눈이 푹푹 쌓이는 여늬 하로밤

아배 앞에 그 어린 아들 앞에 아배 앞에는 왕사발에 아들 앞에는 새끼사발에 그득히 사리워 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곰의 잔등에 업혀서 길여났다는 먼 녯적 큰마니가

또 그 짚등색이에 서서 자채기를 하면 산 넘엣 마을까지 들렸다는

먼 콭적 큰아바지가 오는 것같이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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