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선택하는 존재로 남는다는 것
기술은 계속 변한다. 기술을 활용하던 활용하지 않든 간에 변화는 언젠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문명은 이동의 속도로 확장되었고 에너지로 힘을 얻었으며 정보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생각의 일부를 기계에 맡기는 시대에 들어와 있다. 직업은 사라지고 자산의 기준은 바뀌며 선택의 방식조차 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인간은 여전히 선택하는 존재라는 점이다.
서양철학은 오래전부터 인간을 ‘생각하는 존재’로 정의해 왔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고 그 이후 인간은 이성과 판단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생각은 항상 올바른 방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생각은 빠르지만 때로는 현실과 괴리를 만들기도 한다. 동양철학은 다른 방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 노자는 억지로 무언가를 만들려 하지 말고 흐름에 따르라고 했으며 공자는 인간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완성해 간다고 보았다.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살아가는 존재다. 서양이 ‘무엇이 옳은가’를 묻는다면 동양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묻는다. 이 두 질문은 다르지만 결국 하나로 모인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AI는 답을 만들어준다. 가장 빠르고 가장 적절해 보이는 선택지를 제시한다. 그래서 인간은 점점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존재가 되어간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인간의 역할은 더 분명해진다.
선택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AI는 가능성을 계산할 수는 있지만 그 가능성 중 무엇을 택할 것인지는 결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길은 더 단순해진다.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더 빠르게 계산하는 것도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는가의 문제다.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도(道)’는 정해진 길이 아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정답도 아니다. 걸어가면서 만들어지는 방향이다. 서양철학이 세상을 측정하고 이해하려 했다면 동양철학은 그 안에서 살아가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는 이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이해해야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의 인간은 생각하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선택하는 존재로 남아야 한다.
경험은 그 선택을 만들어준다. 시간은 그 선택을 축적한다. 그리고 그 축적은 한 사람의 방향이 된다. 기술은 계속 변하고 시스템은 더 정교해지겠지만 인간의 길은 점점 더 명확해진다. 누군가는 선택을 맡기고 살아갈 것이고 누군가는 선택을 만들어가며 살아갈 것이다. 그 차이는 능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명한 경험에서 만들어지고 그 경험은 선택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지금 내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선택된 삶을 따라가고 있는가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한 사람의 길을 만든다. 그리고 그 길이 바로 인간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