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의 귀환

여행은 공항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돈을 꺼내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해외여행이 일반화된 시기에 환율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한국은 미국보다 더 많은 돈을 풀면서 모든 자산가치에 거품이 끼었다. 문제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내고 은행에 신용으로 돈을 주면 신용도가 높고 자산을 많이 가진 사람에게 돈이 흘러가고 일반 서민은 화폐의 가치가 낮아진다음에나 물가가 올라간 것을 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는 것을 체감하게 된다. 이것이 공평한 것일까. 부동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이득에 의해서 돈을 찍어내서 가치 없던 부동산이 가격이 올라간 것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말한다.

01.jpg

인천공항으로 직접 가도 되고 공항철도를 이용하기 위해 서울역에 들어서는 순간, 공기의 결이 달라진다. 유리 천장을 통해 쏟아지는 빛 아래에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다. 사람들의 손에 들린 캐리어 바퀴가 바닥을 긁으며 만들어내는 소리는 이곳이 단순한 역이 아니라 ‘출발의 공간’이라는 것을 느끼게 만든다.


02.jpg

여행은 언제 시작되는 걸까. 비행기에 탑승하는 순간일까, 아니면 공항에 도착했을 때일까. 아마도 그보다 훨씬 이전일 것이다. 이제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도 다른 국가 특히 미국 달러를 가지고 있어야 되는 시대가 되었다. 원화의 가치를 하락시킬 때 달러라도 보유하고 있어야 어느 정도 환차손 방어가 되기 때문이다.


03.jpg

이란전쟁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여행을 준비하며 이동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환율이 높은 시기에는 그 흐름이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숫자는 매일 변하고 그 변화는 조용히 우리의 선택을 흔들 때가 있다.

04.jpg

같은 100달러라도 언제 꺼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어제의 돈과 오늘의 돈은 가치가 같지 않다. 카카오 달러박스에 넣어두었던 달러를 꺼내기 위해 공항철도로 향해본다.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그랬지만 인천공항에서는 카카오 달러박스의 달러를 뺄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05.jpg

해외여행을 위해 누군가는 설렘을 안고 누군가는 익숙한 길을 반복하며 누군가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움직인다. 하지만 모든 이동에는 이유가 있다. 그리고 그 이유의 중심에는 언제나 ‘선택’이 놓여 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돈은 숫자가 아니라 시간과 방향을 가진다는 것을 말이다.

06.jpg

지금 이 시점에, 이 돈을, 이 방향으로 쓰겠다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서울역 공항철도 입구 앞에 서면 그 선택은 더 또렷해진다. ‘공항철도 도심공항터미널’이라는 글자 아래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속도로 이동한다.

07.jpg

신한은행 지점에서 원하는 환전 서비스를 할 수가 있다. 카카오뱅크 달러박스는 1회에 600달러, 한 달에는 2,000달러까지 출금할 수 있다.

07.png

화면 속 숫자로만 존재하던 돈이 실제 지폐로 바뀌는 순간 그 돈은 다시 현실의 시간 속으로 들어온다. 손에 쥔 달러는 가볍지만 그 안에는 무거운 흐름이 담겨 있다. 전쟁, 금리, 시장, 그리고 수많은 변동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멀리 있는 것처럼 보였던 것들이 결국 이 작은 종이 한 장에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인지 달러를 꺼내는 일은 단순한 출금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처럼 느껴진다.

08.png

같은 금액이라도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그래서 돈은 쌓이는 것이 아니라 흐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나는 그 흐름 위에 올라타 있다. 달러를 손에 쥔 채 공항으로 향하는 이 길 위에서 이미 여행은 시작되고 있다.

09.jpg
10.jpg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에 오르기 전과 출국 심사를 지나기 전 혹은 심지어 공항에 도착하기 전부터도.

여행은 장소가 아니라 선택의 방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방향을 따라 걷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정읍의 내장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