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모여 사는 마을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난 논산의 노성과 파평윤 씨의 윤증고택

지금은 특정 성씨가 모여 사는 마을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특정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삶의 동심원이 만들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이웃과는 교류가 많지는 않다. 사람들은 이동하고, 도시는 확장되며, 관계는 흩어지는 시대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곳들이 있다. 이전 세대부터 이어져 온 사람들이 하나의 시간을 이루며 살아온 마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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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노성이라는 지역은 그런 공간이다. 논산을 이야기하면 광산김 씨, 파평윤 씨, 은진송 씨가 떠오른다. 특히 벚꽃이 피어나는 4월 초중반에 방문하면 이처럼 아름다운 마을이 있을지에 대한 감탄이 절로 나오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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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은 명재 윤증이 살았던 고택을 중심으로 파평윤 씨가 모여 살던 대표적인 집성촌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지역에는 유난히 ‘윤 씨’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이곳에서는 하나의 역사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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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명재윤증고택과 노성향교를 중심으로 심어져 있는 벚꽃을 감상하면서 조용하게 걸어본다. 명재 윤증은 윤선거의 아들로 송시열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러나 스승과의 갈등 이후 그는 스스로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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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선택은 단순한 결별이 아니라 사상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었고 그 결과로 노성이라는 공간에 하나의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졌다. 윤증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한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제자들은 근사록을 읽었고 윤증은 그 소리를 들으며 흐트러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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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기에 딱 좋은 시기에 방문하면서 바람도, 그늘도 아닌 ‘배움’이었다는 사실이 이곳의 시간을 더 깊게 만든다. 노성면 곳곳에는 그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명재고택을 중심으로 종학당, 재실, 영당, 고택, 묘소, 그리고 노성산성까지 이곳은 하나의 관광지가 아니라 하나의 이야기 구조처럼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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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지역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 마을이 어떤 공간이었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서로의 삶을 알고 누군가가 떠나면 금세 알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도 벚꽃감성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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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시절처럼 같은 성씨가 모여 사는 구조는 희미해졌지만 가끔 만나는 파평윤 씨 사람들에게서 그 흐름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파평이라는 이름이 고구려 시기의 지명에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온 시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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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을 지나 위쪽으로 올라가면 애향공원이 나타난다. 애향공원에도 벚꽃에 대한 감성을 제대로 느껴볼 수가 있다. 이곳을 떠난 사람들이 고향을 기억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잔디광장과 야외무대, 그리고 출렁다리와 선비상까지 이곳은 과거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으로 확장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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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의 길 위에서 나는 현재를 걷고 있지만 동시에 과거를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두 시간이 겹치는 순간 이곳은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하나의 ‘시간의 공간’이 된다. 벚꽃이 피는 계절이든 여름의 열기가 머무는 시간이든 이곳에서 흐르는 것은 계절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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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을 놓치면 벚꽃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가 없다. 그렇게 역사와 시간의 의미와 더불어 봄꽃이야기로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기억을 남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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