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인간, 최치원

함양에서 만나는 한 사람의 사유, 최치원 역사공원을 걷다

최치원의 다른 호칭이기도 한 고운은 말 그대로 곱다는 느낌을 받게 해 준다. 최치원은 전국의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지만 함양만큼 무게를 가진 곳도 많지가 않다. 봄이 막 올라오는 날의 공기는 유난히 가볍다. 겨울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지만, 분명히 계절은 바뀌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런 날에는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간을 걷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까. 함양의 최치원 역사공원은 바로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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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게 펼쳐진 잔디광장과 부드럽게 이어지는 산책로, 그리고 멀리 이어지는 산의 능선은 이곳이 단순한 공원이 아니라 하나의 ‘시간의 장소’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걸음을 천천히 옮기다 보면, 이 공간이 왜 만들어졌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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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중심에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신라의 문장가이자 사상가였던 최치원이다. 최치원은 단순히 뛰어난 글을 썼던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시대를 읽고, 그 속에서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려 했던 사람이었다.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하고 이름을 떨쳤지만, 다시 신라로 돌아온 이후에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깊은 고민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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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함양에서의 최치원은 단순한 ‘위인’이 아니라, 이 지역이 품고 있는 하나의 철학적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다. 역사공원을 걷다 보면 현대적인 건물과 전통적인 공간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다. 유리로 만들어진 건물의 반사된 빛과, 한옥의 처마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같은 공간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이 대비는 마치 최치원이 살았던 시대와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연결해 주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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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광장을 지나 천천히 걸어볼 수 있는 길 그리고 그 끝에서 만나는 고요한 공간은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저 눈으로 보는 풍경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정리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최치원은 세상을 바꾸려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의 글 속에는 늘 그런 긴장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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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미 정해진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고민.


이 두 가지 질문은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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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최치원 역사공원은 조용했다. 관광지 특유의 소란함보다는, 일상의 여유가 더 많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작은 물길이 흐르고, 나무 사이로 바람이 지나간다. 그 흐름은 빠르지 않고, 그렇다고 멈춰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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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습은 어쩌면 최치원이 바라보았던 세상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그 안에서 인간이 느끼는 고민과 질문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시대를 살든, 우리는 결국 비슷한 질문을 반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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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걷다 보면 그 질문들이 조금은 선명해지게 된다. 함양이라는 지역에서 최치원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한 인물을 기리는 것을 넘어선다. 이곳은 ‘생각하는 공간’을 만들고 있는 지역이다. 자연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하나로 묶어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이곳에서의 여행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었는가 보다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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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의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걸어 나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답을 찾으려고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치원은 답을 남긴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남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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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함양에서, 그 질문을 다시 떠올려보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곳을 찾을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란 생각으로 이날의 여정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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