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는 순간에 더 선명해진다
봄은 언제나 눈에 보이기 전에 먼저 분위기와 공기로 찾아온다. 아직은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들판과 산자락 사이로 조금은 따뜻한 흙냄새 속에 가벼워진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함안군 여항면으로 들어가는 길도 그랬다. 산으로 둘러싸인 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계절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길 끝에서 만나는 곳, 청암마을이다. 청암마을은 특별히 화려한 것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오히려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 풍경 속에서 사람은 더 색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마을 입구의 오래된 표지석도 보이고 가끔씩 조용히 지나가는 차 한 대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할 때도 있다. 그리고 사람보다 먼저 계절을 알아차린 나무들에서는 매화, 산수유, 간간히 벚꽃도 보인다. 이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조금 다르게 느껴진다.
그 조용한 마을 한편에서는 조금 다른 움직임도 시작되고 있었다. 올해 3월부터 시작된 가요 TV 유튜브 방송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청암마을의 공공건물에 걸린 현수막은 이곳에서도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는 신호처럼 보였다.
걷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변화는 언제나 거대한 도시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마을에서도 시작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란 것이다.
도시에서 시작되는 변화가 아니라 이렇게 지역의 한 공간에서 시작되는 변화는 오히려 더 오래 남을지도 모른다. 기술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사람의 이야기는 결국 공간 위에 쌓이기 때문이다.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걸음을 옮기면 봉암지가 조용히 모습을 드러낸다.
생각이라는 것은 이렇게 속도가 느려질 때 비로소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내려와서 그리고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이미 한 번 피어났던 매화가 조용히 꽃을 떨구고 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가장 먼저 봄을 알렸던 꽃은 가장 먼저 그 자리를 떠난다.
물은 늘 그렇듯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보여준다. 잔잔한 수면 위로 산의 능선과 하늘이 겹쳐지고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걷기에 좋다. 이곳에서는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걷고, 바라보고, 잠시 멈추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매화는 늘 시작과 끝을 동시에 떠올리게 만든다. 우리는 언제나 꽃이 피는 순간만을 기억하려 하지만 사실 계절은 지는 순간까지 포함하고 있다. 함안군 청암마을에서의 봄도 그랬다. 완전히 시작된 것도 아니고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유튜브 방송이 시작되고 변화는 어디선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꽃이 피고 지는 이 모든 흐름 속에서 우리는 같은 시간을 살고 있지만 서로 다른 속도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여행은 어디를 갔느냐보다 어떤 속도로 그 공간을 걸었느냐가 더 중요해진다. 청암마을을 나서며 마지막으로 다시 매화를 바라보았다. 이미 지고 있는 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아마도 봄이라는 계절은 피어나는 순간보다 지기 시작하는 순간에 더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라가야 고장 함안에서 조용하게 사색하고 싶다면 청암마을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