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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5. 2017

부여야(夜)

궁남지에 핀 가을 국화

밤이 깊어갈수록 더욱더 아름다워지는 곳이 있다. 전국이 가을 국화꽃의 축제가 한창이던 지난 10월에 국화향기가 끝이 난지 알았건만 지난 5일까지 부여 궁남지에는 가을국화꽃의 매력을 한층 느껴볼 수 있는 국화전 시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을이 제철이라는 코스모스도 졌지만 늦은 가을에도 그 화사함을 가진 국화는 은일의 꽃이다. 부여에는 백제의 마지막을 간직한 연못 궁남지가 복원이 되어 있다. 여름에는 연꽃이 화사하게 피고 겨울에는 고즈넉한 맛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보통 보는 국화는 지금 많은 개량종이 나왔지만 그중에 좋은 것은 고려 충선왕이 원나라에서 돌아올 때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밤과 낮으로 온도차가 적지 않아 대부분의 꽃이 졌지만 국화만큼은 초겨울까지 피어 밤을 밝히고 있다. 

일본 역시 국화를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 백제때 일본으로 노랑, 빨강, 하양, 검정, 파랑색의 국화가 넘어갔다고 일본 기록에 남아 있고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가진 나라는 일본이라고 한다. 한자를 그대로 사용하여 불리는 국화는 우리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이 된다. 

국화에는 여러 가지 전설이 내려오는데 어떤 여인이 수놓은 꽃에 향이 없어 한탄하고 있을 때 동해 바다 여신이 수놓은 꽃에 숨을 불어넣었더니 이렇게 생생하게 살아나서 짙은 향기를 간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늦은 서리를 견딜 수 있는 국화는 은일화, 천대견초, 은군자라고도 불리며 사군자의 하나로 모란, 작약과 함께 3 가품으로 꼽힌다. 

올해는 제14회를 맞이하는 굿뜨래 국화전시회로 전국의 여느 국화꽃 축제보다 볼 것이 많았다. 백제 왕실의 연못이라는 궁남지와 국화는 그 의미에서 맞닿아 있다. 일찍 심었는데도 늦게 피는 군자의 덕은 백제 예술의 깊이와 닮아 있고 서리를 이기고 꽃을 피우는 지조는 백제의 찬란한 기술을 보여주는 듯하다. 지형을 잘 활용하여 건축물을 짓던 백제인들의 건축기술처럼 자연을 통한 수행과 멋을 간직한 꽃이다. 

문풍지 울어


감잎 뜨락에 

국화꽃 필 때

국화꽃 몇 잎

문고리 곁에 두었더니


삼동내내 

한지에 번지던 

샛노오란 햇살 


- 윤효 - 국화꽃

관상용으로 주로 보는 다른 꽃과 달리 국화는 버릴 것이 하나 없다. 여름에는 잎을 먹고 가을에는 꽃을 먹으며 겨울에는 그 뿌리를 먹을 수 있다. 바쁘게 움직이고 빠른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요즘 달여서 먹는 국화차 한 잔은 느림의 미학과 더불어 인생의 여백을 관조할 수 있는 여유를 선사한다. 

한반도 모양으로 만들어진 틀에 하얀색의 국화를 수놓았다. 부여를 수놓은 국화꽃 향기가 짙은 어둠을 뚫고 콧속으로 흘러들어오고 있다. 마른 감국꽃 서너 송이를 찻잔에 넣고 끓인 물을 2분간 우려 마시면 두통, 현기증, 혈압강하, 진정효과, 눈의 충혈 등에 좋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네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서정주 -

벌써 14회째를 맞이한 궁남지의 국화전 시전은 올해 처음 만나본다.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며 역사책에 길이 남을 시를 남긴 포은 정몽주 조차 국화를 사랑하며 국화 시를 남겼다. 백제 무왕과 선화공주의 전설적인 사랑이야기가 내려오는 궁남지와 사랑할 수밖에 없는 국화는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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