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는 진실의 가면
진실이라는 것을 대면하면 무척이나 쓰라릴 때가 있다. 살다 보면 추악한 것이 아니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진실도 만나게 되는데 어떤 이는 그것을 진솔하다는 미명 아래 아무렇지 않게 던진다. 의미 없는데도 불구하고 굳이 말해서 관계가 나빠지는 진실이라면 말할 필요는 없다. 최민식 주연의 영화 침묵에서는 말하지 않는 진실의 가면을 쓴 아버지가 나온다. 딸로 인해 생긴 살인사건을 뒤집기 위해 무던히 노력하는 것 같지만 돈과 성공을 바라보면서 물질적으로만 해주었던 자신의 과오로 인해 생긴 진실을 감추는 아버지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침묵이라는 단어는 무척 불편한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최근 한화그룹의 3남 김동선에게 폭행을 당한 소속 변호사가 있는 김앤장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돈과 권력 앞에서 사람들은 침묵한다. 그리고 그 침묵을 당연시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욕하기도 하지만 그 입장에 서면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행동을 한다. 돈으로 모든 것을 다할 수 있을까. 재력과 사랑을 다 얻은 것처럼 보였던 임태산은 자신의 딸과의 불화를 일으키던 약혼녀 유나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과연 딸이 범인일까. 모든 인맥과 돈을 동원해서 딸을 무죄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임태산은 돈으로 모든 침묵을 사려고 한다. 비열해 보이고 때로는 천박하기까지 한 임태산은 어디까지 저급해질 수 있는 것일까. 미라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을 둘러싼 치열한 법정 공방이 벌어지는 가운데 사라진 그날의 CCTV 영상을 갖고 있는 유나의 팬 ‘김동명’(류준열)의 존재가 드러나며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세상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은 한 남자의 참회는 자신에게로 칼을 겨누게 된다. 인생에서 실패해본 적이 없고, 돈이 곧 진심이자 권력이라고 믿는 그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좇는 모습은 임태산이라는 인물의 캐릭터적 특성과 확신과 의심, 사실과 진실, 진심과 거짓을 오가는 관계를 적당히 녹아들게 했다.
딸을 변호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여자 최희정 변호사는 무엇이 진실인지 자신이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지를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정의로운 검사가 이 세상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속에서 검사는 나름 돈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역시 보이는 진실만을 믿으며 누군가의 수족으로 전락하게끔 된다. 검사는 증거가 인정되는 표면적인 진실만을 다루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사실, 진실 두 단어가 가진 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사실은 그냥 단편적으로 알려진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말하고 진실은 그보다 더 깊숙한 곳에 숨겨진 통찰력을 의미한다. 돈과 권력을 좇았지만 결국 진실을 숨기고 침묵하면서까지 딸을 지키고자 했던 그에게서 과연 진실이 있기나 했을까.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미안함과 딸에게 못해준 것에 대한 지극한 부성애가 스크린에 펼쳐지지만 그가 보여준 부성애는 진실되지 못했다. 마지막에야 딸을 지켜주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모든 것을 뒤집어 쓴다고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딸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을까. 성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왜곡하면서까지 딸 혹은 여성은 여전히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임태산에게서 오만한 남성의 가부장적인 모습이 드러난다.
그래서 마음이 편안가? 참회는 그렇게 쉽고 간단하게 되지 않는다. 감옥 안에서 마음의 짐을 던 아버지와 감옥 밖에서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는 딸... 누가 더 괴로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