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된 살인 Part 12

여행

여행


주변 사람 중에 여행 가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모두들 여행 가고 싶다고 말은 하지만 지금 당장 돈이 아쉬워서 자영업 하는 사람들은 혹시나 손님을 빼앗길까 두려워서 못 떠난다. 나 역시 그랬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여행을 떠나게 만든 수경이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운명이 있다면 내가 이쯤에서 여행을 가게끔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한 여자 귀신만 안 붙으면 되었는데. 뭘 하던지 보고 있을 거 아냐. 게다가 기억하기도 싫은 전 여자친구의 친구라니 인생 기구하다.


"거기 있어요?'

"있으면 대답 좀 해봐요."

"예 있어요. 밖에 구경하고 있어요. 살아 있을 때는 이렇게 여행하면서 밖을 본 기억이 없는데 죽어서 보네요."

"저도 정말 오래간만에 여행 가는데 귀신과 같이 갈 줄은 몰랐네요."

"신경이 쓰이겠지만 없다고 생각하고 가세요."

"뭐가 없다고 생각하고 가요. 뻔히 지켜보고 있을 텐데."

"그럼 어떻게 해요.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지훈 씨뿐인데."

"알았어요. 그렇다 치고. 시체는 발견된 거예요?"

"예 발견되었어요."

"그럼 기분.. 아니 복수하고 싶다라던가 범인을 잡고 싶다 이런 생각은 안 들어요?"

"아직은 그런 생각 같은 건 안 들어요. 누군지도 모르고요."

"보통 영화나 TV에서 보면 귀신이 복수하려고 하잖아요. 옛날 이야기 중에 장화홍련전이나 일본 영화 령 이런 거 모두 복수하고 관련되었잖아요."

"그건 모두 인간관점이죠."

"아니면 저에게 부탁해서 어머니한테 말 좀 전해달라던지.. 그런 거도 없어요?"

"머라고 전해요? 죽었는데 혼령이 옆에 잘 있다고 전해달라고요? 그래 봤자 도움되는 건 없죠. 죽은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고 판단하는 건 아직 오지도 않은 외계인의 생각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거예요."

"그래요. 그렇다 칩시다."

"그런데 어디로 갈 거예요?"
"우선 남해 쪽으로 내려가다 진주에 가서 점심을 먹고 그 밑으로 내려가려고요."

"근데 왜 진주예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진주에 데려간 적이 있는데 그때의 기억이 남아있네요."

"회귀하는 연어처럼?"

"내가 무슨 거기다가 알 낳으러 가요?"


진주는 물의 도시라고 해야 하나. 남강은 진주 대부분의 시내를 모두 감싸고 돌고 있고 가까운 곳에 진양호까지 있는 물을 빼고 말할 것이 없는 도시.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뛰어내렸다는데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거기 혼자 가서 멀 먹는다는 거지?


"아참 진주에 가면 뭐 먹을 거예요?"

"왜요? 어차피 먹을 수도 없잖아요."

"모르죠. 혹시 빙의하면 나도 맛볼 수 있을지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시도하지 마요. 생각은 안 해봤는데 진주하면 장어 아닌가요?'

"장어보다 진주비빔밥 추천할게요."

"비빔밥 하면 전주죠. 무슨 진주에서 비빔밥을 먹어요."

"뭘 모르시네. 소 양지머리를 푹 고운 사골국물로 밥을 해서 차지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밥알 위에 하나하나 꼬리만 따서 얹은 콩나물과 나물의 위에 듬뿍 올려진 육회와 그걸 엿과 섞은 맛 고추장으로 비벼먹으면 얼마나 별미인데요."

"그래요? 갑자기 진주비빔밥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럼요. 진주까지 가서 그걸 안 먹고 오면 섭섭하죠."


휴식


병원 근무는 3교대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는다. 다른 근로자들은 모르겠지만 대부분 쉬는 시간을 별로 의미 없게 보내면서 중요시하게 여긴다. 몇 년 전부터인가 내 일도 많아지고 있다. 실손보험이 나오면서 굳이 안 찍어도 될 MRI나 CT를 찍는 사람이 많아졌다. 건강을 위해 찍으면서 그 부작용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인간이다.


"저분만 찍으면 되는 거죠?"

"예 그리고 퇴근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쪽으로 오세요."


매일 경찰이 하는 대화를 감청하는 것도 내 일중에 하나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살인사건을 조사하여 나의 거주위치가 발각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시체를 은닉하는 장소에 신경을 많이 쓴다. 경찰들은 지리 추정 프로파일링이라고 부르는데 범행을 저지른 위치를 지도 위에 표시하고 지 도위에 점들로 원을 그리다 보면 나의 행동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지만 그때 한 명만 제외하고 철저하게 잘 위장했다.


아침 10시 오픈하고 저녁 10시에 커피숍 문을 닫는다. 차를 세우고 그곳까지 가는데 더미 CCTV가 2개, 실제로 찍히는 CCTV는 4개가 있다. 물론 사각지대가 있는 장소가 있다. 커피숍 문을 닫고 마을버스를 타기 위해 골목길을 내려가는 도로에서 200미터쯤 되는 곳이 가장 적당하다. 마취시켜 차에까지 끌고 가는데 리스크가 제일 적고 노출도 되지 않는다. 단 하나 문제 되는 것이 있다면 밤 10시는 아직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이목을 돌릴 것이 필요하다. 화재... 불을 피워야 되겠다. 박스를 만들고 안에 휘발유가 들어간 상자를 넣어놓는다. 그리고 초를 넣은 다음 10분쯤 있다 초가 넘어지면서 준비해둔 마그네슘분에 불이 붙기만 하면 된다.


도준


범인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성폭행이나 연쇄살인을 위한 것도 아니고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 정보가 별로 많지 않다. 수경이라는 사람의 주변을 조사했는데 그 여자에 대한 글을 올린 사람은 4년 전쯤 그녀와 헤어진 진구라는 남자다. 4년 전의 일을 가지고 최근에 살해했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도 않는다. 그럼 은애는 왜 죽은 거지?


"집에 안 들어간지 2일이 넘었지? 괜찮아?"

"아닙니다. 그런데 CCTV를 계속 보다 보니 용의자만 계속 늘어나는 느낌이에요."

"자 커피 한잔씩 하세요. 제가 쏘는 거예요."

"역시 외국물 먹는 사람은 달라요."

"커피랑 외국물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기호식품이지."

"머 그렇다는 거죠."

"제가 말한 대로 수경은 상관이 없죠?"

"그러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문이나 머리카락, DNA 뭐하나 나온 것이 없으니 최근 피해자가 있었던 주변의 CCTV를 분석하는 수밖에 없죠."

"최근부터 확보된 영상을 봤는데 이렇다 할 용의자를 골라내지 못했어요. 심지어 납치되는 영상도요."

"범인은 CCTV 사각지대를 노렸을 거예요. 그거 아니고는 설명할 수가 없죠."

"수경이에게는 물어봤어요? 피해자 주변에 이상한 일은 없었는지."

"별다른 것은 없었대요. 그리고 그날도 자신은 친구와 만나 클럽에 간 것도 확인이 되었고요."


위에서는 난리다. 또 피해자가 나오면 가만 안 둔다고 난리인데 실마리도 안 잡히고 인터넷 게시판을 모두 닫으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광수대도 투입이 되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쪽도 쉽지 않을 듯...


"또 피해자를 물색하고 있겠죠?"

"아마도요. 흠.. 의료인, 술집, 사기, 냉동, 알리바이, 마취, 소신, 정의"

"경찰이 수사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 그런 사람이죠."


흉기가 피부를 뚫기 직전에 피부에 가해진 압력으로 피부는 늘어나게 된다. 아이스 킬러라 불리는 이 범인은 피살자가 죽은 후에 사체를 베거나 찌르지도 않았다. 칼이 몸속에 들어가면 근육이 칼을 붙잡기 마련이고 그 와중에 범인의 흔적이 남을 수도 있는데 마찰이 상당히 적은 칼을 사용해서 그런지 티끌 만한 흔적도 없었다. 머리카락 하나만 발견돼도 그 사람의 직업과 사는 곳, 직업도 추정할 수 있는 게 지금의 기술 수준이다. 사용된 칼은 도살장 같은 곳에서 나 쓰는 거라는데.. 그런 칼을 살 수 있는 곳은 널려 있고 탐문조사를 해보고 몇몇 사람을 불러 조사했는데 별다른 용의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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