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이 없으리라는 확신이다.
빛은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 과제를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리고 순응하면서 살아간다. 순응하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은 훨씬 쉬워진다. 불평등, 불공평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더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광복 이후에 한국의 국민들은 나라를 위한다는 고통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살아왔지만 독재자들은 이를 대놓고 이용해 왔다. 오랜 시간의 정권의 공고화를 위해 빨갱이 논리를 끌어들였고 나름 성공적으로 반백년을 유지해왔다.
1987년이라는 영화는 너무나 가련하고 약해서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풀뿌리 같은 삶을 그리고 있다. 박종철의 고문치사, 데모 중 최루탄 직사를 맞고 쓰러진 이한열이 이 영화에서 등장한다. 외부의 위협을 만들고 정권을 공고화하기 위해서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스토리에는 수많은 죄 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안기부의 서슬 퍼런 칼날이 대한민국을 가르고 있을 때 남영동 안 가는 진실 왜곡의 정점에 있었다.
없는 죄를 만들기 위해 고문하고 심지어는 죽이고 그 가족까지 연좌제로 모두 감옥에 보내버리던 시대에 1987년 1월 경찰 조사를 받던 22살의 청년이 사망한다. 고문치사를 숨기기 위해 의례히 하던 요청을 서울 지검 대공수사 부장인 최 검사에게 요청한다. 누가 봐도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것을 안 최 검사는 청와대, 안기부, 검찰 상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신 보존 결정을 내려버린다. 그 사건을 인해 최 검사는 옷을 벗게 되고 그냥 덮이는 듯 보였다. 상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부검을 하지만 그 소견은 묻혀버리는 위기에 처한다. 옷을 벗고 나가는 최 검사는 그 사실을 기자에게 흘리고 강고한 공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대항하는 사람이 밀집하기 시작한다.
중앙정보부를 국민을 위한 조직으로 바꾸겠다고 이름은 안기부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전두환의 정권을 지키기 위한 조직으로 존재하고 있었고 당시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휘하는 대공수사처장은 대공 형사와 안기부 직원들을 이끌며 모든 음모를 꾸민다. 있지도 않는 대한민국 정권 전복 음모를 만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지했던 시기에 깨어있는 지식인들을 엮어 넣었다. 우리네 부모가 그러했다. 필자의 어머니 역시 박정희를 찬양했고 전두환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살기 좋았다고 착각하면서 살았다. 외식 한 번 하지 못했고 겨울에 냉골방에 살면서도 그것이 잘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론은 그들의 손에 있었지만 모든 여론을 장악하지 못했다.
영화의 숨어있는 주인공은 교도관으로 일하면서도 진실과 정의를 위해 뛴 한병용과 그의 조카 연희다. 적폐와 그걸 깨려는 사람들은 명확한 인식이 있었다면 이들은 그냥 소시민뿐이었다. 진짜 이건 아니잖아라고 말하며 밟히고 밟히다가 일어선 사람들이었다. 격동기에 한 사람의 죽음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지만 지금 보면 차라리 그때가 너무 명확했다. 잘못되어 있는 것이 너무 눈에 잘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은밀하면서도 오랜 작업 끝에 국민과 국민이 서로 반목하고 남자와 여자가 편 가르고 청년과 노인을 양편에 놓고 싸움을 붙이며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는 진실을 밝히는 영화가 아니다. 1987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기본을 말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정의 같은 것도 아니다. 양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정의란 먹고살기 좋게 하는 것 혹은 돈을 주는 사람에게 있다. 그 과정에서 공권력을 쥔 사람들이 강자의 편에서 약자를 누를 뿐이었다. 공권력은 대한민국을 위해 쓰여야 하지만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특정한 사람이나 조직의 목적에 의해 쓰이는 경우가 많다.
진정한 어둠은 빛이 없으리라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당시 대한민국을 지배했던 어둠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당시 운동권이었다는 사람의 상당수가 정치인이 되었지만 그들이 적폐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권력을 한 번 쥐면 사람을 악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만약 필자에게도 그런 힘이 주어질 때 악마가 된다면 믿어준 사람들에게 무슨 말이 할 수 있을까.
세상은 눈 떠 있는 사람이 많아야 변화할 수 있다. 사회를 외면하고 정치를 더럽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될 그 순간이 반드시 오게 될 것이다. 1987년 호헌철폐를 하고 직선제를 이루었지만 10년 뒤인 1997년에는 국민이 아닌 적폐 기업에 의한 IMF를 맞았고 그리고 20년 뒤에는 자랑스러운 태극기를 왜곡하고 더럽게 만든 사람들에 의해 양극화되었고 더욱 팍팍한 삶이 있는 대한민국으로 뒷걸음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