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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모든 엄마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극히 사랑한다.

인간 세상은 법도 있고 규칙도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상당히 모순적이다. 정직한 것 같으면서도 정직하지 않고 비루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비루하다. 자신의 이득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것 같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머뭇거리기도 한다. 살아 있으면서 수많은 죄를 짓고 산다. 자신이 알고 저지른 죄도 있지만 모르고 저지른 죄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죄를 짓는 사람은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떤 이는 현세에서 인간이 만들어놓은 벌을 받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저승에서 벌을 받는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은 모순적인 상황에서 모순된 행동을 하고 그것을 숨기면서 살아갔던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주마등처럼 스쳐간 두 권의 책이 있다. 한 권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로 모순적 상황에서 인간성 회복의 염원을 그렸던 '죄와 벌'이고 다른 한 권은 단체의 신곡이다. 단계를 밟아가면서 자신의 죄를 인본주의적 살인의 장치가 그려진 신곡과 노파를 살해하고 죄의식에 시달리다가, 고독과 자기희생으로 살아가는 창녀 소냐의 순수한 마음에 감동을 받아 자수한 라스콜리니코프의 삶이 녹아 있다.


영화는 소방관의 자기희생으로 시작한다. 저승차사 해원맥과 덕춘, 차사 강림은 모든 인간이 사후 49일 동안 거쳐가야 할 7번의 재판을 도와주는 존재들이다. 어르기도 하고 때론 협박하기도 하고 하면서 인간이 가지고 있을 모든 것을 끄집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도 구원을 받게 된다. 이들은 귀인이 될만한 49명의 망자를 환생시키면 인간으로 환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7번의 재판에 등장하는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은 단테의 신곡에서 나오는 지옥과는 조금은 다르다. 신곡에서의 지옥은 9단계를 거친다. 9단계는 색욕, 폭식, 탐욕, 분노, 이단, 폭력, 사기, 반역이다.

염라대왕은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진정한 용서를 구하는 것은 온전히 인간이 해야 할 일이다. 아주 극소수만이 그 과정을 통과할 수 있다. 차사들은 남다른 능력이 부여되기는 하지만 자신이 맡은 인간의 일부만 볼 수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49일 동안 밝혀낼 의무만 있다. 수많은 사람을 구했던 소방관에게는 어떤 진실이 숨겨져 있을까. 단계를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Lasciate ogni speranza, voi ch'intrate. 단테의 신곡에서 등장하는 문구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솔직하게 말하면 영화의 CG는 조금은 조잡한 편이다. 그냥 내용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본다면 무리는 없다. 옛날에는 인간이었을 차사들 역시 완전하지는 않은 존재다. 여러 사연을 가진 인간을 만나면서 그들 역시 완성되어간다. 어떻게 보면 바뀔 가치가 있는 인간이기에 차사로 임명되어 오랜 시간 그 생고생을 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은 연약하고 비루할수록 사연이 기구해진다.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별다른 고난 없이 학교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 가정을 이루면서 잘 살다 죽었습니다.'라는 이야기는 인간의 관점에서는 원하는 그런 삶이지만 누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연약하고 기구하고 배고프고 힘들수록 이야기가 구구절절해진다. 그리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영화는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인간의 모순된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순히 죄짓고 살지 말자라는 말은 너무 단순하다. 모순된 삶을 벗어나기 위해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스스로 지은 죄를 속죄하기 위해 살았다면 지은 죄는 덮일 수 있을까. 일어난 것은 일어난 것이고 벌어진 것은 벌어진 일이다. 착한 일을 했다고 해서 이미 저지른 일이 희석될 수는 있어도 묻힐 수는 없다. 그러나 단 하나의 방법이 있다면 진심으로 자신의 죄에 마주하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왜 신은 이 세상을 이렇게 불공평하고 불완전하게 만들었을까. 아마도 자신은 그렇게 불완전한 상태에 놓여본 적이 없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 사연이 있는 사람이 그 굴레를 벗어나 빛이 나기 시작할 때 그 빛은 너무나 오묘하고 영롱하다. 모두에게 어머니는 있다. 한 번도 부모가 되어본 적이 없기에 미숙하고 실수도 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키운다고 하면서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어머니는 자신의 방식으로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존재다.


신과 함께-필자에게도 이런 글을 쓸수있게 손을 만들어 주신 어머니가 계셔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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