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천흥사지 5층 석탑과 당간지주

천안의 북쪽에 자리한 천흥사는 지금은 그 크기를 유추해보기 힘들지만 당간지주가 세워져 있는 곳과 5층 석탑이 자리한 위치로 추정해보건대 상당히 규모가 컸던 사찰이라는 생각이 드는 곳이다. 당간지주는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위치가 변경되지 않았다면 사찰의 경내에 자리한 석탑까지의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소중한 보물들은 있다. 그 보물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온전히 그 사람의 생각이나 바람으로 비중이 정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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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흥사지 당간지주는 5층 석탑으로 가기 전 수백 미터 앞쪽의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보통 보물은 일반적인 지정 기준에 도달하는 문화재를 지정한 것인 반면, 국보는 보물 중 인류문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크고 유례가 드문 것을 지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보물의 가치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지정번호는 가치의 높낮이를 표시한 것이 아니고 지정된 일련 순서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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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흥사지 당간지주는 당간을 걸어 놓기 위해 만들어놓은 돌기둥이나 철기둥을 말하는데 대부분 돌로 만들어지며 철기둥은 한국에 딱 세 개만이 남아 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청주에 있는 철당간이다. 천흥사지 당간지주를 보면 두 지주의 안쪽면에는 아무런 조각이 없지만, 맨 꼭대기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간을 장치하였던 네모난 간구(杆溝)가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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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면으로 와서 자세히 살펴보면 바깥쪽면에는 가운데에 꼭대기에서 아랫부분까지 1줄로 된 세로띠를 돋을새김 하였는데, 띠무늬의 단면은 활 모양이며, 그 양쪽에는 높이가 낮은 세로띠가 가늘게 조각되어 있다. 꼭대기에서 바깥쪽면으로 내려오면서 둥근 활 모양을 그리며 깎은 것을 볼 수 있다. 민가에 있어서 그런지 당간지주에다가 고추를 말리기도 하고 곡식을 말리는 주민들도 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 있었던 물건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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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주변에 사는 주민들의 운동코스로 자주 이용되는 도로변에 있는 천흥사지 5층 석탑을 처음 보았을 때 돌의 구성에 규율성이 엿보이면서 위로 올라갈수록 급격한 변화가 아니라 완만하게 조밀해지는 특징이 있어서 그런지 장중한 느낌이 묻어난다. 천흥사는 고려 태조 왕건의 집권 초기인 921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데 태조가 성거산이라고 산 이름을 짓고 그때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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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에 만들어진 디테일하고 웅장한 정림사지 5층 석탑과 다른 소박한 매력이 있는 천흥사지 5층 석탑은 아래 넓은 지대석 위에 2층 기단이 놓여 있는데 상층기단이 하층 기단에 비해 유난히 높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비례를 보여주고 있다. 5층 석탑의 상층기단은 4매의 돌로 이루어졌고 각 면에는 우주만 표현되어 있다. 상층 갑석은 아래에 약간 경사진 부연이 있고 윗면에는 호형과 각형의 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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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흥사지 5층 석탑을 지나면 저수지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하늘이 흥하게 한 절, 천흥사(天興寺)라는 이름으로 지어졌지만 폐사가 될 운명을 피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천천히 계단을 밟으면서 걸어서 올라가 본다. 사람도 혼자서 1주일만 지내면 정신이 피폐해지는데 자신과 짝을 이루던 법당도 건물도 모두 사라지고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천흥사지 5층 석탑의 숙명은 하늘에서 내려주신 건지 몰라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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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흥사가 처음 세워졌을 때는 이 천흥저수지가 없었다. 저수지가 생기면서 절터의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다고 한다. 무언가를 거대하게 새로 만들게 되면 무언가는 사라지게 된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의미가 있을 때가 있지만 그것으로 인해 폐허가 되면서 옛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모든 것이 사라지고 인간이 만든 보물이라는 이름으로 유지되는 천흥사지 5층 석탑과 당간지주를 보며 꼭 쥐고 혹은 보관하고 있는 보물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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