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Mar 29. 2018

상화원

자연과 어우러진 비원

대한민국에서 비원(秘苑)이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곳은 창덕궁의 후원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붙여준 창덕궁 비원은 임진왜란 때 불탔다가 광해군 때 다시 복원되는데 왕조실록 주해에 의하면  "기이한 화초와 괴석들을 늘어놓고 원유의 꽃과 돌 사이의 곳곳에 작은 정자들을 만들어 그 기교하고 사치스러움이 예전에 일찍이 없었다"적고 있다. 그만큼 아름다운 정원을 비원이라고 부르며 전국 곳곳에 비원을 사용하여 표현하는 곳이 적지 않다. 서해의 낙조를 볼 수 있는 한국식 전통정원을 지향하고 있는 상화원은 서해의 비원이라고 불리며 지난해에만 15만 명이 방문하였다고 한다. 올해는 시설을 확장하여 석양을 볼 수 있는 곳에 데크길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공간인 석양 정원을 조성했다고 해서 찾아가 보았다.


상화원은 보령의 대표 관광지중 하나인 죽도에 만들어진 정원이며 회랑길이다.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그 세월을 견뎌낸 소나무가 중심에 있고 바다와 만나는 곳에는 이렇게 회랑길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 길이가 2km에 이른다. 상화원은 동절기에는 휴관하는데 그동안 주변 정리와 데크길의 보수 등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상화원을 방문해본 것이 벌써 4번째다. 봄, 여름, 가을 그 모습이 달라서 계절마다 다른 느낌을 받게 하는 곳이다.

데크길은 죽도의 남쪽과 북쪽을 쭉 이어주고 있는데 중심에는 펜션 같은 숙박시설과 전국에 유명한 한옥을 그대로 옮겨와서 조성한 한옥마을이 자리하고 있는데 단체로 세미나나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 상화원의 회랑은 계단을 잘 이용하여 만들어졌는데 사람은 계단을 이용해 수직으로 이동하면서 동시에 수평으로 이동을 하는데 시선의 변화를 통해 새로움을 접해볼 수 있다.

회랑을 통해 걸으며 주변의 풍광을 만나본다. 어떤 구조의 건물 이든 간에 개구부가 필요한데 통행의 목적, 바라보고 싶은 조망 욕구, 바람을 쐬고 바깥소리를 듣고 싶은 통풍등의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상화원의 회랑은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데 가장 큰 비중을 두고 만들어졌다.

회랑의 초입에는 수묵을 사용한 화훼인 취당 장운복 화백의 한국화가 걸려 있는데 작품을 감상하면서 걷다 보면 회랑이 끝나는 곳에는 5,000권을 읽고서야 비로소 붓을 들 수 있었다고 말했던 추사 김정희가 극찬하였던 산수화의 달인 소치 허련의 후손인 임전 허문의 꽃 그림을 만나볼 수 있다.

죽도는 대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에 상화원에서 바깥을 바라보면 적지 않은 대나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대나무와 해송이 같이 어우러져 서해바다의 풍광과 궁합이 꽤나 괜찮아 보인다.

특히 상화원은 오래된 한옥의 부속물들을 잘 활용하여 오래된 것과 자연의 조화를 만들어냈는데 기능상 필요하기도 하지만 장식은 설계에 적용된 부차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한옥이 만들어낸 순수한 공간 그리고 진정한 구조물로써의 가치를 표현하는 좋은 방법으로 이런 철장식도 포함이 된다.

오래된 건축물에서 가져온 이 기둥과 보는 고려 후기에 건립된 화성 관아에서 가져온 것 중 집으로 사용하지 못했지만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큰 것이라고 한다. 이런 형태의 구조는 중국 건축방식의 두공과 유사한데 두공은 서로 맞물리는 목재 받침대들로 구성된 구조 요소로 기원전 7세기 이후에 보급되어 한옥에서도 많이 사용되었다. 두공은 기둥을 보에 연결시키고 각 부분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어 접착제나 고정 없이도 부재들의 결속이 가능하다.

이곳은 신(신격) 상의 동산으로 다양한 조각상 등을 감상해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동상으로 동상(Statue)은 라틴어의 '서서 응시하다'에서 유래하였다. 보통은 공공장소 한가운데에서 그 영향력이나 신성함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숭배되기 위해 존재한다.

아름다운 신체를 보여주는 여자 동상이 눈길을 끈다. 동상은 기묘하게도 다른 작품들과 달리 그것을 만든 조각가보다 동상 자체가 유명해지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뉴욕에 세워져 있는 자유의 여신상을 알지만 그것을 만든 사람이 프레데릭 오귀스트 바르톨디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조선시대의 왕들은 후원에 가서 자연의 변화에 매료되어 빼어난 경승을 노래한 시들을 지었다. 상화원의 정원은 사계벌 변화가 거의 없는 소나무들이지만 매번 시선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이고 보령의 간척지를 만들어낸 둑이 이어지는 풍광도 만나볼 수 있다.


"임금의 마음이 바르면 조정이 바르게 되고, 조정이 바르면 사방이 바르게 되어 모든 복과 좋은 상서가 모두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하늘과 땅의 지극한 즐거움이 어찌 이에서 벗어나겠는가. 만일 풍경의 번화함을 구경하겠다는 즐거움이라면 나는 이를 취하지 않겠다."  - 숙종 [어제기]

회랑길을 조금 더 걷다 보면 바다를 바라보며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나오고 조금 더 바다에 근접하는 데크길이 이어진다. 겨우내 상화원은 바다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석양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석양 정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총길이는 350m로 걸어가는 길목에 108개의 벤치를 만들어서 석양을 감상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했다고 한다.

해 뜨는 순간인 일출과 해가 넘어가는 순간인 일몰은 항상 있지만 볼 때마다 다른 기분이 든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루가 저물어가는 것을 알리는 빨간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음에 감사하며 나 자신을 다독여준다.

이제 곧 4월이 되면 일반에게 공개되는 이 석양 정원에서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매주 토요일에 일몰 1시간 전부터 와인바에서 커피와 와인, 간단한 다과를 제공하는데 바다에 있는 촛불이 켜지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이때 와인 한잔을 곁들일 수 있다.

미리 와인과 다과를 맛보았는데 한 끼의 식사로는 부족할 수는 있어도 분위기만큼은 풍족하게 느껴볼 수 있었다.

아직 해가 저물려면 시간이 조금 더 있어야겠지만 죽도의 아름다운 바다의 매력은 충분하게 느껴볼 수 있다.

조금 더 위쪽으로 올라오면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 홍씨 가옥 문간채를 비롯하여 청양군 남양면 대봉리 이대청 씨 가옥, 홍성군 장곡면 행정리 오홍천 씨 가옥 등을 만나볼 수 있는데 이 곳에서는 간단하게 차를 마실 수 있어서 상화원을 돌아보다가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재료의 성질에 따라서 구조의 법칙을 변화시켜 적용한다는 생각은 건축적 형태를 구성하는데 새로운 토대를 만들어 주었는데 특히 한민족이 거주하며 살았던 가옥은 목재를 소재로 만들었다. 목재는 콘크리트 구조물과 달리 따뜻함을 품고 있다.

죽도의 나지막한 언덕이 만들어주는 천연의 언덕과 골짜기 그리고 주변을 둘러싼 바다, 인공을 최소화하고 자연이 주는 소나무와 바위와 언덕이 아름다운 경관을 만들어내는 데에 상화원의 진면목이 있다.

죽도의 바다가 면한 곳에 정원을 조성하였는데 북쪽에는 한옥마을이 임해 있고 수십 년 자란 소나무를 쳐다보면 마치 회랑 북동쪽에 있는 비상하는 조선말이 연상된다.

드디어 서해바다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해가 떨어지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지만 해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그 속도가 순식간이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어느 정도는 규칙적으로 살아야 하고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모두들 노력한다. 그러나 길을 잃고 싶은 욕망은 모든 사람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한옥마다 제 나름대로의 특색이 있고 회랑 너머로 바다에서 여유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보령 상화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