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Mar 31. 2018

외암민속마을

봄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사람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그런데 봄이 오는가 싶더니 날이 너무나 더워져서 이러다가는 바로 여름으로 가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간절함에 밖으로 가출을 해보았다. 가출은 보통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정신적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도피하는 행동의 일종이지만 하루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나오면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해주는 일탈이 되어주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올해도 봄이라는 선물이 다시 도착했다. 봄이라는 선물은 만물에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을 넘어서 사람에게 생동감을 부여해준다. 


봄에 피는 꽃과 생생하게 살아나는 주변의 생명체의 커가는 모습을 혹시나 놓칠까 해서 나왔지만 어느 곳이 좋을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산의 외암민속마을은 봄을 만나기에 가장 적당한 장소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직 꽃이 만개할만한 시기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빨리 피어나는 새싹을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천에 녹색의 풀들이 자라고 있고 개나리와 벚꽃과 각종 생명들이 주변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봄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물에서도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 같다. 위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더 크고 맑게 느껴진다. 20도를 넘는 온도를 보니 반팔을 입고 나올 걸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자동차에 에어컨 가스가 떨어져서 한여름의 찜통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 어제였는데 에어컨 가스를 충전한 것을 올해 가장 잘한 일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오후 5시쯤 가서 그런지 몰라도 봄의 색채보다는 가을 같은 느낌이 드는 사진이다. 바람이 그렇게 세게 불지는 않았지만 봄바람은 조금은 불어도 괜찮지 않을까. 외암 이간이 살았기에 외암민속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곳은 사람들이 실제로 살고 있는 마을이다. 집집마다 대문에는 어떤 이가 살고 있는지 표시를 해두고 있다. 매일매일을 찾아오는 사람들로 귀찮을 만 하지만 이제 계절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친한 지인처럼 느껴지는 듯했다. 

외암민속마을의 이정표를 따라 가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양반들과 백성들의 가옥이다. 하인들이 거주하던 공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양반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었다. 대물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인 사랑채는 방과 마루로 구성된 남자들의 생활공간으로 손님을 맞기도 하고 그곳에서 글을 처음으로 배우고 익힌다. 안채는 외부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곳으로 안이 잘 들여다보지 않게 만든다. 여자들의 주된 생활 무대가 바로 안채다. 

지금도 살림살이는 상당히 중요하지만 옛날에는 집안 대대로 물려주는 여자들만의 특권이기도 했었다. 남자들은 보통 바깥일과 사람을 상대하는 일을 했기에 살림살이를 잘 아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집안이 잘되기 위해서는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말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남자들이 노름 등으로 가산을 탕진하면 아내가 아무리 잘해도 한계는 있었을 것이다. 

여류시인이나 기생들은 글을 잘 알았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들은 글을 배우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적지 않은 여성들이 글을 배우고 다양한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글을 읽고 있는 여성을 표현해 놓은 것으로 보아 이 집안 가문의 여성이 지식인이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러 한 듯하다. 

연못이 있는 정자는 그냥 보기만 해도 여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문명이라고 한다. 문명은 우리의 생활을 많이 바꾸고 편리하게도 만들었지만 너무 편리함을 추구한 덕분에 자연과의 조화를 잊어버렸다. 그러나 과거 선조들의 건물과 정원등을 보면 자연과의 조화를 꾀했다는 것을 다시금 보게 된다. 

외암민속마을에 있는 도로는 하나같이 모두 흙길이다. 반듯반듯하게 만들어놓은 길이 하나도 없이 구불구불하고 차라도 들어서면 먼지가 일어서 불편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길을 만든 이곳의 길은 따뜻한 정감이 묻어 난다. 

가을의 느낌이 달아올랐던 여름의 에너지를 식혀가며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식어감의 아쉬움이라면 봄의 향기는 온기를 품은 생기의 냄새다. 어느 곳을 걸어도 생기의 냄새가 넘쳐난다. 이제 봄을 맞이하는 자세가 되어가는 것 같다. 

제주도는 벌써 벚꽃이 만개했지만 아직 전국이 봄꽃의 향이 진하게 퍼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그래도 자신이 먼저 봄이 왔음을 알리겠다고 일찍 핀 꽃들을 보니 반갑다. 3월의 마지막 날은 이렇게 지나가지만 아직 필자에게는 4월이 남아 있다. 무척이나 바쁠 것이라고 생각되는 달이지만 그 속에서 여유를 놓치지 않으리는 다짐을 해본다. 

약 500여 년 전부터 부락이 형성되어 충남 고유 형식을 가진 고택과 초가집들이 보존되어 있는 외암민속마을은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병사댁, 감찰댁, 참봉댁, 종손댁, 송화댁, 영암댁, 신창댁 등의 택호가 정해져 있다. 그냥 걸어가며 집을 보는 것에만 멈추지 않고 속살을 본다면 이곳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 봄의 에너지를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은 날이다. 


외암민속마을 

충남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 42-7


매거진의 이전글 상화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