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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5. 2018

예천 삼수정

경상북도 예천군은 지나쳐 가본 적은 있어도 잠시 머물러 쉬어본 기억은 없었다. 경상북도에서 푸르른 평야가 펼쳐져 있어서 예로부터 곡창지대로 자리매김했던 곳으로 신라에 속해 있던 지역이기도 하다. 예천을 방문한 시간이 아침 7시쯤으로 태양이 고개를 빼꼼히 내밀고 떠오르고 있을 때였다. 도로를 지나가다가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삼수정)이라는 팻말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핸들을 틀게 되었다. 높은 나무에는 두루미들이 앉아서 내려다보고 있고 굽이치는 낙동강길은 내가 사는 곳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졌다. 


낙동강 쌍절암 생태숲길은 작년에 우리나라 걷기 여행축제의 봄 프로그램 중 한 곳으로 선정되기도 한 곳이다. 낙동강을 모태로 자리한 유교문화는 나란히 흐르는 강의 시간과 함께 했었다. 이번에는 쌍절암까지 가보지는 못했지만 쌍절암은 임진왜란 때 왜병을 피해 도망가던 동래정씨 집안의 두 여인이 함께 낙동강으로 투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곳부터 약 800여 미터를 가면 생태숲길로 가는 길이 나오고 오른편으로 조금만 가면 삼수정이 나온다. 낙동강이 흐르는 것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위치에 정자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데 열린 공간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한 여름에 하루를 보내도 좋은 곳이다. 

위에 삼수정이 보이는데 그 앞으로 심어져 있는 고목들이 멋들어지게 정자를 감싸고 있다. 나무는 오래되어야 제맛이고 그 시간의 흐름만큼이나 고풍스러운 자태를 만들어낸다. 우리 한민족의 정신문화와 비슷한 느낌이다. 성찰의 시간은 오래될수록 좋고 깊이가 더해져서 은은하게 빛이 난다. 저곳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네 그루 나무가 마음속 먼지를 털어내는 세심수(洗心樹)라고 한다. 마음속 묵은 때가 많은 사람은 저 나무를 지나쳐가면서 그때를 털어내야 한다고 한다.  삼수정은 앞면 3칸·옆면 2칸 구조이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예천의 삼수정은 해가 동쪽에서 뜨는 것을 보아 북쪽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처음에 만들어질 때가 1420년대이지만 1636년에 폐하였다가 다시 중건하였다고 한다. 1829년 경상감사로 부임한 정기선에 의해 중건되었고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세 차례 이건 되었다가 1909년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위치를 놔두고 왜 이건 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이 그렇듯이 건물도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 

삼수정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흘러가는 낙동강물을 바라본다. 산림청 사람들은 소나무를 볼 때 반듯하게 올라가는 나무를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데 나무를 잘 아는 사람들은 굽이쳐서 자신만의 멋을 만들어내는 소나무가 더 좋다고 한다. 삼수정을 보니 조금 특이한 것은 한 평이나 될까 가운데에 마루방을 둔 평면 형식을 띄고 있는데 지금까지 돌아다니면서 본 고택 중에 가장 특이했다. 


이곳에 정자를 지었다고 알려진 정귀영이 남긴 기문에 따르면 삼수정의 의미는 “공이 용궁현 별곡에 집을 짓고 살면서 정자의 뜰에 세 그루 나무를 심고 정자의 이름으로 했으니, 공의 뜻은 반드시 ‘진국공 왕호가 세 그루 느티나무를 심고 앞날을 기약한 것’ 중국 주나라의 정승은 ‘삼공(三公)’인데 태사(太師), 태부(太傅), 태보(太保)다. 삼공을 회화나무 ‘괴槐’를 써 ‘삼괴(三槐)’라고도 했다.


세 그루의 회화나무가 상징하는 것이 정승이고 삼수정에 온 것이 그냥 우연만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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