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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Apr 22. 2018

징비록의 풍광

안동 하회마을의 옥연정사와 부용대

임진왜란의 비망록이라고 할 수 있는 징비록은 서애 류성룡이 쓴 것으로 필자도 4~5번 읽어본 기억이 있다. 그 책을 읽고 성웅 이순신보다 서애 류성룡에 대한 비중이 더 커졌다. 전장에서 무신이 더 주목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문신이 하는 역할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육체는 한계가 있지만 정신에 한계가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가정은 의미가 없지만 서애 류성룡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순신 장군은 기록에서 없었을지도 모른다. 


안동 하회마을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가지만 건너편으로 돌아 돌아갈 수 있는 부용대와 옥연정사는 안동 하회마을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이면서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곳이어서 좋다. 안동 하회마을을 여러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부용대는 건너편에 보았지만 이번에는 처음 올라가 보았다. 

높이 64m에 불과한 절벽을 올라가는 길이지만 숨이 살짝 가쁘다. 부용은 중국 고사에서 연꽃을 의미하는데 강물이 둘러싸고 흐르는 하회마을의 모습이 마치 연꽃 같아서 유래하였다. 하회 북쪽에 있는 언덕이었다는 북애였다가 지금은 부용대라고 부른다. 

부용대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 평생 누굴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행복 중에 하나가 아닐까. 징비록을 썼던 서애 류성룡은 이 길을 얼마나 많이 올라 다녔을까. 조정의 무능함으로 인해 한반도의 산천 하에 흘렸던 백성들의 피를 보았던 류성룡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다른 누군가보다 더 고뇌했을 그의 발길을 따라가 보며 생각을 읽어본다. 

안동 하회마을에는 지금도 대대로 살아오는 사람들의 터전이 되는 공간이었다. 딱 1년 전에 하회마을을 와보았다. 지금 이곳에 서서 바라보는 하회마을은 그때와는 다르다. 변하는 모습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은 고인물에 갇혀 있는 셈이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폭넓게 보면 사소하지만 좁혀서 보면 무척이나 파격적이고 역동적이었다. 

부용대 절벽의 끝에서 안동 하회마을을 바라본다. 고소공포증이 없지 않지만 아슬아슬함이 필자가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감정 이런 기분 이런 짜릿함 같은 것이 인생의 기록일까. 그냥 의미 없는 일일까. 

부용대에서 내려와 하회마을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지어져 있는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이 선조 19년 (1586)에 지은 것으로 부용대 기슭에 지으려고 했지만 돈이 부족해서 짓지 못하다가 승려 탄혼이 자를 지원해 주어서 10년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옥연정사를 둘러보기 위해 들어가 본다. 앞에 흐르는 물길이 깨끗하고 맑을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을 옥연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옥연정사 안에는 작은 정원이 있고 이쁜 색깔이 넘쳐나는 꽃이 있다. 이곳에서 징비록을 썼다고 하는 것 자체로도 필자에겐 의미가 있다. 무려 500여 년 가까이 전에 그가 이곳에 있었다. 징비록을 쓰며 후대의 사람들이 다시는 그 고통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쳐야 했다. 일반 백성들이 아닌 일본에 붙어 잘 살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말이다. 

수없이 않아서 앞에 흐르는 물길을 바라보았을 마루에 앉아서 잠시 생각해본다. 잘 산다는 것은 내 생활을 유지된다는 것이라는 의미와 함께 내 정신이 올바르게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을까. 

주택이 아니라서 이렇게 멋들어진 소나무 한그루를 심어 놓지 못했지만 언젠가 재력이 된다면 풍광 좋은 곳에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소나무 한 그루와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고 싶다. 봄의 향기가 집과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지만 사람은 그걸 잘 느끼지 못한다. 그만큼 세상의 무거움에 짓눌려 감각을 깨우지 못함이라 그랬을 것이다. 필자가 만난 징비록의 풍광은 가슴 가득한 맑음이다. 


하나의 글에 의미 있는 감성을 담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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