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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16. 2018

센가쿠지에서 만난 죽음

센가쿠지와 47명의 사무라이

일본 역시 조선처럼 에도막부 시대에 유학의 나라였다.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많지 않던 시대에 승려나 글을 아는 이들은 사무라이들의 존경뿐만이 아니라 영주나 막부를 이끄는 장군에게는 꼭 필요한 존재이기도 했다. 도요토시 히데요시가 죽고 난 후 1603년 3월, 일본 전국을 통일하고 에도 바쿠후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막부의 승인 없이 영주들이 병력을 일으키는 것을 금했다.  慶長17年-1612年 徳川家康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초대하여 창건했으나 寛永18年-1641年 전소되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명의 빛으로 현재 高輪다카나가와에 지은 사찰이었다. 센가쿠지를 가려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가마쿠라를 가려다가 가게 된 곳이었다. 그곳에서 낯익었던 책 한 권을 보게 된다. 키아누 리브스가 등장했던 영화의 원작 47 Ronin이라는 책이었다. 


오래된 사찰이지만 사찰은 그렇게 크지 않아서 30여분이면 모두 돌아볼 수 있다. 고베 아코우(赤穗) 지방의 성미 급한 영주 아사노 나가노리가 바쿠후의 고위 관리였던 키라 요시히사와 말다툼 끝에 칼을 뽑아 부상을 입힌 1701년 3월 이후 아사노는 결국 할복하게 된다. 47명의 가신 무사들은 주군의 뒤를 따르는 대신 고난과 모욕을 감내하며 복수를 계획하고 세모에 키라의 저택을 습격해 성공한 후 ‘추신구라(忠臣藏)’라는 고전으로 남았다. 

할복이 지금까지 일본의 전통처럼 여겨지지만 메이지 천황령으로 1873년에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자신을 희생해서 적을 공격하는 카미카제 전통은 할복의 문화에서 비롯이 되었고 졌지만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으로 기억되고 있다. 

비가 오고 나서 인지 센가쿠지의 경내는 무척이나 색깔이 진하다. 센가쿠지는 도쿄 지하철인 도에이 아사쿠사선 센가쿠지역에서 3분, JR시나가와 역에서 도보로 15분 정도가 걸린다. 여름에서 가을까지는 오전 7시에서 18시까지 방문해볼 수 있다. 

47명이 영광스럽게 자살에 성공한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고 멋진 일인지는 일본인이 아니기에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는 않지만 일본인에게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인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 

메이지 유신 전에 일본은 절대적인 신의 반열에 오른 천황 아래 권력을 가진 장군이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대표적인 일본의 장군이며 그 아래에는 250여 명의 다이묘가 있다. 다이묘에는 성주가 있고 성주를 지키는 사무라이들이 존재했다. 이 곳을 건너면 그들을 모시는 공간이 나온다. 

매년 이곳이 붐비는 날은 12월 14일로 절대복종과 자결을 했던 그날의 기억을 의로운 죽음으로 생각하고 참배한다. 



1702년 12월 14일 밤 47인의 사무라이는 기라 요시나카의 에도 번저를 기습하고 결국  기라가(家)의 사무라이 및 가족 36명을 죽이고  기라 요시나카의 목을 베었다.  1701년 3월 14일 셋부쿠의 명을 받고 죽은 영주 아사노 나가노리와 1703년 2월 14일 한 날 한시에 할복해 죽은 아코번 사무라이 47인의 묘소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기념품은 일본의 도를 상징하는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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