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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16. 2015

영화 사도

역사는 인문학이다. 외출

영조 25년 (1749) 사도세자가 15세 되던 해에 대리청정을 명령했다. 이때 영조의 나이 56세였다. 당시 영조는 정실왕비 정성왕후 달성 서씨가 살아있었다. 사도세자를 아끼던 정성왕후 달성 서씨가 1757년 세상을 떠나자 영조는 숙종의 유지(후궁이었던 장희빈이 정실왕비가 되어 한차례 파란이 일었던 것을 경계함)에 따라 후궁들 중에서 새 왕비를 책봉하지 않고 2년 뒤 김한구의 딸을 새 왕비로 간택하였다. 그녀가 정순왕후 김씨다.


소희 : 우리 커피 한잔 마실까?

진수 : 그래 사도도 봤고 할 이야기들 많을 텐데.

수진 : 영조를 연기한 송강호의 연기는 정말 대단하긴 하더라. 임금으로 모습뿐만 아니라 가족의 가장으로의 모습도 괜찮았던 것 같아.

주만 : 굳이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를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을까. 그런데 사도세자가 첫 아들이었던 거야?

성현 : 아니 첫째 아들은 아니고 사도세자전에 효장세자가 있었는데 일찍 죽었어. 그래서 사도세자가 태어났을 때 더 기뻐했던 거지.

소윤 : 사도세자의 청년을 연기한 유아인이 다시 보이더라고요.

수진 : 이 영화 생각보다 무거운 영화였던 것 같아. 뒤주에 갇혀 죽는 사도세자와 어릴 때 사랑받으면서 자랐지 만 영조의 과도한 기대에 점점 지쳐가는 사도세자가 교차하면서 그려지는데 색다른 긴장감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

진수 : 이씨 왕가로 보면 가족의 트러블을 다룬 것이고 조선왕조로 보면 국가 중대사의 문제였던 것 같아. 우선 영조가 자신이 왕에 오르는 과정에서 후궁 소생의 출신이며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트라우마가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된 시작점이 된 것은 아닐까?

소희 : 영화에서 표현된 영조는 사도세자를 진심으로 사랑했었어. 그 사랑이 온전히 자신만의 방식이었고 너무 일찍 대리청정을 시키면서 심판대에 올린 거지. 그리고 사랑했고 믿었다고 말했지만 진심으로는 믿지 않은 것이 비극의 시초였던 것 같아.


소윤 :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사랑이 분노로 바뀌고 분노가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데 그 과정이 어찌할 수 없는 파국으로 달려가는데 안타까웠어요.

주만 : 잘하는 사람도 자꾸 못한다 하면 주눅 들고 못하기 마련인데 영조는 사도세자를 빠져나갈 수 없는 막 다른 길로 몰았잖아.

성현 : 영화 속에서 그려진 영조는 차가운 완벽주의자에 가까웠던 것 같아. 그리고 조선을 이끌고 있는 왕으로서 사도세자를 아들로 본 것이 아니라 미래에 조선을 이끌 왕의 후계자인 세자로 본거지. 아들이기 이전에 세자였던 거고 사도는 왕이기전에 아버지의 따뜻함을 원했던 건데 두 명의 부자가 원하는 것은 전혀 달랐어. 그리니 비극적인 결말은 초기부터 잉태되고 있었던 셈이지.

수진 : 차가운 남자 영조와 따뜻한 남자 사도, 학문과 예법을 중시한 영조와 무술과 그림을 좋아한 사도, 노론편향적인 영조와 소론편향적인 사도, 이 세가지만 봐도 가까이 두면 안될 사람들이야. 차라리 멀리 떨어트려 놓았으면 좋을걸.

진수 :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 듯. 왕실에서 태어나 어디로 도망갈 수도 없고 적장자로 태어나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사도세자는 무한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잖아.

주만 : 대체 몇 번이나 양위한다고 한 거야. 그런 마음도 없으면서 말이야.

수진 : 죽고 싶지 않으면 양위한다고 해서 덥석 받아들일 수도 없잖아. 무려 5회나 양위소동을 벌였는데 사도세자의 나이가 4,5,9,10,14세 였으니까 어릴 때 그런 정신적인 충격은 영원히 잊지 못할 트라우마를 가슴에 새기게 된 거지.



소윤 : 아들이 자신의 마음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영조의 고독함과 점점 지쳐가고 주눅 들어가는 사도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극대화되는데 어떻게 바꿀 수 없을까? 머 그런 생각도 들었다니까요. 유아인이 불쌍해 보이는데 가슴이 찡한 느낌.

소희 : 아들인데 그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상처를 낼 수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어. 조선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 왕위에 있으면서 현명한 군주였다는 영조조차 아들 하나 자신 마음대로 못하고 무엇이 잘못된 건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면 세상에 모든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완벽한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다시 보게 된 것 같아.

진수 : 사도라고 해서 영조의 아들로 태어나고 싶었겠어. 결국 숙명이 사도를 죽음에 이르게 했잖아. 친아들을 죽임으로써 영조는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조선 왕실의 꿈을 그 손자인 정조에게 이어주었으니까. 어찌 보면 인생사 돌고도는 윤회이며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그런 것 같아.

주만 : 굳이 뒤주에 갇혀서 8일을 괴롭게 만든 다음에 죽여야 했을까?

성현 : 어쨌든 간에 세자잖아. 왕다음에 최고 권력자인 그런 사람을 반역죄로 죽여도 좋다는 상소를 올릴 간 큰 신하가 어디 있겠어. 비록 정치적인 성향이 맞지 않다고 하더라도 영조를 부추기는 정도 밖에 할 수 없었던 거지. 영조 역시 자신의 아들을 마치 반역죄의 주인공 처단하듯이 죽일 수는 없으니까 뒤주에 넣어버린 거고.


수진 :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영조도 자신을 어느 정도 제어했던 것 같아. 대안이 없으니까. 그런데 정조가 태어나 버린 거지. 영화를 보면 그 시점에서 사도세자에 대한 압박의 수위가 노골적으로 커진 것처럼 보여.

소희 : 그치 그 압박을 이겨내지 한 사도는 해서는 안될 기행을 하게 되는 셈이지. 뭐 그것까지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진수 : 왕과 세자라는 것에서 벗어나서 본다면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아버지와 그 기대에 부응하려고 했지만 그 기대의 무게에 짓눌려 서서히 자신을 죽여가던 아들의 비극적인 결말이 감동스럽게 다가온 영화였어.

성현 : 지금도 그런 사례가 많잖아. 영화를 보고 나서 든 느낌은 정말 아버지다운 역할은 무엇인가. 그리고 아들이 얼마만큼 아버지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가.

소윤 : 극적인 결말을 다가가는 것을 그리는데 디테일이 살아 있었어요. 영조는 자신만의 규칙을 정해놓고 병적으로 그걸 지키려는 모습이나 어릴 때부터 학문보다 군사놀이를 즐겨하고 감성에 충실했던 사도세자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더라고요.

소희 : 정조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에서 몇 장면으로 극화해서 그려졌던 사도의 모습이 살아 숨 쉬는 것 같긴 해. 역사서에서 기록된 사실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영상으로 그려내는 것이 의미 있다는 사실은 영화 사도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던 것 같아.



임오화변 : 나경언의 고변으로 인 시작된 이 일은 사도세자를 궁지에 몰게 된다. 보름이 넘게 대죄해도 용서해준다는 영조의 말이 없자. 사도세자는 칼을 들고 나서는등 매우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는 궁내에 이상한 유언비어를 퍼지게 만든다. 영조는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지만 세자는 자결하지 않았고 결국 뒤주에 가두라는 명을 내린다. 뒤주에 들어간 세자는 8일 만에 뒤주 안에서 숨을 거둔다. 이때가 1762년 7월로 조선 왕실 역사상 가장 기묘하게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사건으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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