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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6. 2018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이야기들

사회에서 실격을 당했다는 것은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상적인 신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밀려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한국사회에서 애초부터 실격이 된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고유한 개인으로 성장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가지게 된다. 그 색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와 자원이 불공평하기 때문에 사람마다의 차이가 발생한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은 장애인을 대변하는 책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사회적 약자이며 고유성을 존중받지 못한 인간의 이야기다. 사회는 특정한 장애를 가졌거나 성소수자, 정신질환자, 교도소의 재소자 혹은 이들은 고유성이 아닌 단체로 취급을 받는다. 흔히 기사에서 보면 특정 취향이나 직업을 거론하는 것은 그것에 대한 선입견을 먼저 부여함으로써 주목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잘못된 삶'은 착하지 않거나 나쁜 짓을 저지른 삶이 아니라 존중받지 못하는 삶,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실격당한 삶을 말하고 있다.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고유성과 숨겨진 '아름다움'을 전개할 무대와 관객이 없다면 스스로를 억누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스스로가 억눌린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실격당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정상인에게도 해당이 된다.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로 활동하는 저자이기에 법률적인 논증으로 풀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저자의 다양한 경험의 서술을 통해 주장의 객관성을 높이면서 다방면의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쉽게 읽히는 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생각할 이슈가 많기에 의미는 있다. 단순히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서 살기 좋게 그리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만약 의사가 정상이라고 판단했는데 불구하고 장애를 가진 아이로 태어나게 되면 손해를 배상해야 할까. 그 아이의 입장에서 정상으로 태어나지 못했기에 누군가가 그 책임을 져야 할까. 성인이 돼서 결혼하는 것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지만 태어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날 뿐이다. 


"완벽할 정도로 발달한 성찰적 자아를 통해 자기 신체를 스스로 파괴하는, 연못에 빠져 익사할 때까지 일어나지 않고, 스스로 배를 가르는 고도의 성찰 능력이 보여주는 역설적인 타인 지향적 연극을 극복하는 힘, 때로 무력하고 별 볼일 없음을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힘,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가진 것이 없다는 부정을 선언하는 힘, 거기서 우리는 타인 지향성을 넘어선 진정성의 한 형태를 본다."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탈코르셋 운동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노력하고 자신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사람들을 이상한 것처럼 생각되게 만들고 있다. 누구나 아름다워질 자유가 있다.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해서 빠져나오기 힘든 매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가 수용하면 된다. 그것을 정체성 정치를 통해 누군가가 함께해주길 바라는 것도 함정이 있다. 


내적 수용을 통한 잘못된 삶이 아닌 자신만의 삶을 선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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