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는 풍년인데 스토리는 흉년일세
개봉하면서 하도 미디어를 활용해서 캐릭터를 부각하였던 터라 독전이라는 영화가 궁금하긴 했었다. 독한 놈들의 전쟁이라는 의미의 독전은 캐릭터들이 모두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문제는 강한 캐릭터를 등장시키면 등장시킬수록 관객들의 시선과 관심이 분산된다는 것에 있다. 베일에 싸인 이선생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등장하는 악인들은 그들의 표현상 무척 강하다.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는 한편 여자까지 독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런데 그걸 합치면 어떻게 될까.
캐릭터가 강하고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실에서 쉽게 만나기 힘들다. 그것만으로 충분할까. 장르가 가진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굳이 이선생이 누군지 궁금하지가 않다. 베일에 쌓여 있는 그 인물이 한 짓은 자신들의 측근과 경찰 끄나풀을 아무렇지 않게 죽였다는 정도이고 누구나 이선생 인척 하길 원한다는 점이다. 누구인 척하는 것이 어떤 메리트가 있을지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그런데 딱히 그렇게 메리트는 없어 보인다.
경찰의 끄나풀을 하는 이 센 언니는 그냥 센 언니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하면서 무언가 어색하다. 그냥 망사스타킹에 강해 보이는 메이크업과 굳이 가죽재킷은 팔꿈치에 걸치면 센 언니가 되는 것 일가. 그가 이선생을 잡으려고 하는 결정적인 이유 속에 이 센 언니의 죽음이 있었다. 경찰인 원호의 입체적인 색깔이 안 살아나는 것이 이 영화가 가진 단점이다. 왜 그토록 이선생을 잡고 싶은지를 알 수가 없다. 심리적인 묘사도 겉돌고 그렇다고 해서 치열하지도 않다.
조진웅을 비롯하여 김성령, 류준열, 박해준, 진서연, 차승원, 김주혁까지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기대감을 높였지만 캐릭터를 생각하고 이들을 적당한 자리에 놓은 것인지 모를 만큼 정리가 잘되지 않는다. 영화의 스토리는 각기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다가 하나로 이어지는 느낌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의 스토리는 각각 옴니버스식으로 진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한 나쁜 놈이 없어지면 다른 나쁜 놈이 등장하고 그놈이 없어지만 다른 놈이 남는다.
이서연이라는 배우는 이 영화를 통해 떠서 좋았을지 몰라도 독전은 독하게 사람들의 심리를 흔들면서 실망을 시킨다. 마지막에 숨겨진 이선생이 누군지 밝혀지지만 마치 유주얼 서스펙트를 어설프게 베낀 것 같은 결말로 나아가면서 메시지도 재미도 잃어버렸다. 독전속의 캐릭터는 풍년이었지만 전체적인 짜임새는 흉년으로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