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꽃으로 피어난 남자
하동에는 고운 최치원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하동의 대표 사찰인 쌍계사의 고운영당을 가면 최치원의 초상화가 있고 조금 힘들지만 위쪽까지 올라가면 나오는 불일폭포에서는 용추와 최치원의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신흥사터에 가면 화개초등학교가 있는데 왕성분교장 교문 앞에 큰 푸조나무는 최치원이 꽂은 지팡이에서 살아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경주 최씨의 시조이면서 필자의 조상인 고운 최치원은 천년의 차향기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예전에 내려간 하동에서 고운 최치원을 만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전 세계라고 볼 수 있는 중화의 중심이었던 당나라에 크게 이름을 떨친 것은 879년으로 황소의 난 격황소문을 작성하면서부터다. 그리고 하동에는 888년 하동 상계사에 머물면서 진감선사 대공 탑 비문을 작성한다.
동방 나라의 화개동은 항아리 속 별천지라고 했다. 선인이 옥침혈 밀어내는 이 몸과 세상이 문득 천년이라. 봄이 오니 꽃이 땅에 가득하고 가을이 가니 낙엽이 하늘에 날리네. 지극한 도는 문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이는 눈앞에 있었다네...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최치원의 시를 인용해 한국과 중국의 교류가 1,0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한국 시인 최치원은 '동쪽나라 화개동은 호리병 속의 별천지라는 시로 한반도를 찬양했으며 실제 하동의 화개동을 가보면 봄 매화와 벚꽃, 배꽃, 설쭉, 녹차꽃이 만개한 곳으로 별천지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고 풍류를 제대로 즐겼던 사람으로 고운 최치원만 한 사람이 있을까. 보령의 맥섬을 비롯하여 그가 거닐던 곳은 모두 전설이 되었고 스토리텔링이 된다. 아마도 고운 최치원이 글을 잘 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쓴 글은 지금도 화자 될 만큼 많은 곳에서 거론되고 인용된다.
하동의 아름다움이 그림 하나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산수가 멋지게 그려져 있다.
화개 왕성분교에 있는 지팡이 푸조나무는 수령이 500년 이상되었으며 높이는 25미터에 달한다. 최치원은 그곳에 지팡이를 땅에 푹 박아 버린 후 "이 지팡이가 살아나면 나는 신선이 되리"라는 말을 남긴 채 지리산으로 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잔의 차는 사람의 손이 닿는 정성과 예를 담고 있다. 그리고 한 잔의 차에서 우러나는 것은 진하디 진한 맛뿐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향기다. 쉼 없이 살아왔던 필자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것은 한걸음 한걸음에 어느새 지나가버린 삶과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한 잔의 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