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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2. 2018

성지순례

솔뫼성지에서 출발하여 합덕성당과 신리성지 등으로 이어지는 순례길은 1일 오전 9시부터 시작되었다. 충남은 성지순례길을 할 수 있는 좋은 여행지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일본의 구마노고도, 중국의 차마고도는 지구 상에서 역사적 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다. 그중에 산티아고는 가장 유명한 종교의 순례길이기도 하다. 아직 산티아고는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 가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싶다. 

솔뫼성지는 순례길의 시작점으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솔뫼성지는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한현(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 신부님(1846년 순교)에 이르기까지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으로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하여 기념탑, 개인과 단체 100여 명이 피정을 할 수 있는 피정의 집, 

기념관과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기념과 성당이 있어 많은 사람들의 방문이 이어지는 곳이다. 

충남 당진은 순례길이 잘 조성되어 있기도 하지만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특징이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제주도의 올레길에는 빨간색과 파란색의 이정표가 있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가리비가 상징이다. 가리비 조개 모양의 이정표만 따라가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가리비는 복음을 전파하다가 순교한 예수의 제자 야곱의 시신이 배에 실려 스페인에 도착했을 때 가리비들이 그의 몸을 덮어서 보호하고 있어서 상징이 되었다. 

교황청에서 성덕이 뛰어난 사람으로 선포한 이를 성인이라 한다. 천주교에서 시성이란 죽은 이를 성인(聖人)으로 올리는 것이고, 시복이란 복자(福者)로 올리는 것이다. 공경의 대상에서 공식적으로 추대된 사람은 복자다. 

정면으로 보이는 한옥집이 김대건 신부의 생가이다. 솔뫼성지의 김대건 신부는 1821(순조 21)에 충청남도 당진에서 태어나 1831년 조선교구 설정 후 신부 모방에 의해 신학생으로 발탁되어 15세 때 마카오에 있는 파리 외방 전교회 동양 경리부로 가서 교육을 받은 후 철학과 신학 과정을 이수한 그는 1844년 부제가 되고 다음 해에 주교 페레올의 집 전하에 신품 성사를 받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가 된다. 

천주교는 인간의 자그마한 번뇌의 실수도 인정하지 않는데 결혼의 중요성이나 의미가 큰 종교이기도 하다. 

김대건 신부가 체포된 것은 1846년 6월 5일로 이가 병오박해다. 평등함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정치적으로 활용하였으며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예루살렘의 여정은 수난의 연속이었다. 성지에 가면 예수의 마지막 삶을 엿볼 수 있다. 

제자가 배반하고 백성들을 등을 돌렸으며 최후의 만찬을 하고 이후에 붙잡혀 재판을 받고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지고 산에 오른 후 십자가형에 처해져 죽고 나서 모든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세상을 떠났다. 

모든 사람은 살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다. 우리가 아직 풀지 못한 숙제를 풀면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우는 것이다. 천주교에서 자살을 가장 큰 죄악으로 생각하는 것은 죽을 자격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큰 형벌일 것이다. 

합덕성당은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솔뫼성지에서 출발해서 신리성지까지는 버그네순례길이라고 해서 약 10여 km가 걷기 좋게 조성되어 있는데 그 중간의 기착점 역할을 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이곳에 온 사람들은 모두 환한 얼굴로 마치 여행을 떠나듯이 순례길을 여행하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충청남도 각지에서 온 사람들끼리 먹을 것을 나누어 먹으면서 담소를 나눈다. 

순례길을 걷는 것은 트레킹 혹은 둘레길 여행의 다른 모습이다. 중간 기착점에 천주교와 관련된 성지나 성당이 있을 뿐이다. 시간과 여유를 가지지 못한다면 떠나기 힘든 순례길에서 많은 사람들의 밝은 표정을 만나서 좋다. 

잠시 쉬었으니 다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천천히 걸어가는 시간이지만 순례길은 다른 측면에서 보면 열정의 길이며 새로운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올해 여름의 막바지에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을 보면서 결국 인생은 어떻게든 간에 흘러가는 것이지만 그 방향은 자신이 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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