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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3. 2018

아리다

서산 팔봉산 육쪽마늘

6쪽 마늘 혹은 육쪽마늘이라고 불리는 마늘은 온난한 기후와 비옥한 황토에서 재배되어 맛과 향이 우수하고, 조직이 단단하여 저장기간이 길어 보관이 용이한 것이 특징이다. 실제 중국 등에서 들어온 마늘이나 비교적 저렴하게 팔리는 마늘을 냉장고에 넣어두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썩지만 육쪽마늘은 오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서산의 팔봉산까지 왔기에 배가 고파졌다. 우선 팔봉산 기슭에서 산채비빔밥을 한 그릇 먹어본다. 배가 고파서 그런지 운동을 많이 해서 그런지 몰라도 식욕이 상당하다. 한 그릇으로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들 정도다. 

서해안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전국 각지에서 많은 등산객이 찾는 팔봉산은 운암사지를 비롯하여 정수암지, 천제 터 등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사찰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가뭄이 심할 때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옛 서산 읍지인 『호산록(湖山錄)』에 따르면 8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어 팔봉산(八峰山)이라고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팔봉산은 서산의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산행지로 추천할만하다. 보통 사람 몸에 좋은 작물은 땅의 힘을 필요로 한다. 인삼, 생강, 도라지, 마늘 같은 특용작물은 땅의 힘인 지력이 부족하면 잘 자라지 않고 그 효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팔봉산의 산록 완사면이나 평탄지에는 생강이나 마늘, 양배추 등 비교적 지력이 많이 소모되는 특용 작물이 재배될 수 있었다. 

8개의 봉우리가 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걸쳐 있으면서 동남쪽의 금강산과 연결되는데 전체적인 형상[팔봉산~금강산~연화산]은 U자형의 산세를 이루면서 바다 쪽으로 만입형의 계곡을 볼 수 있다. 그늘도 적당하게 있어서 뜨거운 태양빛을 받으면 걷지 않아도 된다. 

팔봉산에서 재배된 마늘은 한눈에 보아도 맛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그 밑에서는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자신이 직접 재배한 작물을 팔고 있었다. 지나가는 길에 이 마늘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이 마늘로 요리하면 음식이 맛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 

마늘 한 접은 100개의 마늘이 매달려 있는 것을 말하는데 실제 100개가 넘었다. 게다가 제대로 된 서산 육쪽마늘은 상당히 비싸지만 이곳에서는 무척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다. 찾아보면 알겠지만 보통 40,000 ~ 50,000원은 주어야 구입할 수 있다. 한국식품 개발연구원의 분석 결과 위암 등 암세포를 죽이는 치사율이 탁월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수막염이나 식중독을 일으키는 유해균에 대한 항암, 항균작용 효과가 탁월한 알리신 함량이 풍부한 것이 이 마늘이다. 

잘 잘라진 마늘을 봉지에 나누어 담아서 지인에게 그냥 주려고 전화했더니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까서 가져오란 소리에 잠시 고민했다. 괜히 마늘을 산 것일까? 딱 보아도 무척이나 단단해 보여서 마늘을 까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딱 들어맞았다. 

그래도 까 보기 시작한다. 오~ 마늘이 상한 것이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당히 품질이 좋다. 마늘을 까기 시작했는데 무아지경에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인지 어디에 와있는지 몽롱해지기 시작할 때 1시간 30분 정도가 지나갔다. 마늘 까기의 매력은 그만두지 못하는 데에 있다. 자꾸 까고 싶어 지는데 손은 무척이나 아리고 아프다. 

1차로 까놓으면 이런 비주얼이 된다.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은 마늘을 까 본 것은 처음이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약지가 조금씩 아릴 정도다. 멈출 수가 없다. 특히 음주 후에 마늘 까기를 권해본다. 술에 취한 것인지 시간에 취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지나간다. 

이 마늘과 어울리는 요리가 생각났다. 이 마늘은 그냥 먹어도 고소하면서 달달한 맛이 있다. 오래간만에 매력 있는 마늘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마늘을 까고 보니 마늘이 너무나 이쁘게 보이는 것은 정신이상일까? 아니면 노력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일 것일까. 마늘 한 접을 빠르게 까는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정도 걸린다. 그것도 손이 빠르다는 필자의 손놀림에도 말이다. 다음에는 질 좋은 마늘을 보더라도 외면할 수 있는 마인드를 가져야 할 듯하다. 


마늘은 까는게 아니라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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