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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5. 2018

독도 vs 다케시마

보령에서 만난 독도

자기 소유의 것을 계속 내 것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일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빼앗길 수도 있으니 내 것이라고 말해야 할까. 내 것이라고 계속 반복적으로 말하는 것이 소유권을 주장하는 데 있어서 효과적이라면 충분히 의미는 있다. 개인과 국가는 다르다. 개인이라는 존재는 생명체로 홉스에 의하면 인간의 자연 상태'란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 그렇기에 공동생활에서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파괴의 악순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개인은 국가의 지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사람이 모인 공동체이며 인간사회의 한 형태인 국가는 영토가 지리적 경계를 가지고 있고 주권을 보유하고 있다. 주권을 가진 대한민국의 작은 섬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다.


보령박물관의 기획전시실에서는 보령에서 만난 독도라는 주제로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어 찾아가 보았다. 작년에는 독도를 알리고 그 의미를 지속적으로 국민들에게 전파하는 재단에서 활동한 적이 있어서 독도를 조금 더 많이 접해본 기억이 있다. 

노래의 가사말처럼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독도는 어떤 곳일까. 동쪽의 끝자락에 있는 작은 섬이며 울릉도와 근거리에 있는 섬이며 일본이 계속 영토분쟁을 만들기 위해 그런 섬으로만 기억되는 곳일까. 동도와 서도를 하나로 합쳐서 독도라고 부른다. 우리는 생각보다 독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시 국가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과열된 민족주의가 세계대전을 초래한 뒤, 일본 역시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패배하게 된다. 그리고 강제로 빼앗겼던 독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로 편입이 된다. 한스 켈젠과 오스카르 이카초 등은 국제주의 이론을 주창했는데 켈젠은 국가를 단순히 총체적인 법질서로 정의하기도 했다. 모든 국가 간 분쟁은 국제적인 조직에 의해 논의되기도 한다.  국제 사회에서 교섭을 통해 자국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행위를 외교라고 부른다. 

사실 독도문제는 외교적인 문제의 안건으로 거론될 것은 아니다. 광복이 되고 나서 1946년 1월 29일 연합국 최고 사령관 각서와 6월 22일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에 이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가 언급이 된다. 문제는 공식 서한이 아닌 러스크 서한에서 "독도 혹은 타케시마, 리앙쿠르 바위로 알려진 섬에 관하여, 우리 측의 정보에 의하면 평상시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이 암초는, 한국의 일부로서 취급되었던 적은 천혀 없으며, 1905년 경부터, 일본의 시마네현 도청의 관할 하에 있었습니다. 이 섬에 대하여, 한국에서 지금까지 주권을 주장한 적이 있다고 보이지 않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러스크 서한을 언급하지만 공식적 입장이 아닌 러스크 서한이 아닌 포츠담 선언문 8항에는 * 포츠담 선언 8항 :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고쿠 그리고 이제 결정될 외곽의 작은 섬들로 제한될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진으로나 실제 독도는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동해의 비경을 모두 가진듯한 욕심 많은 섬이다. 날이 좋을 때나 입도가 가능한 독도는 쉽게 접근할 수도 없는 곳으로 1년에 입도가 가능한 날이 얼마 되지도 않는다. 

독도는 정권이 바뀌면서 종종 외교분쟁의 문제로 비화되기도 했다. 외교 기술은 상대국의 이성에 호소하여 자국 입장의 합법성·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나 거래라는 형식을 빌려 협상을 도출하는 방법을 잘 사용해야 한다. 상당히 미묘하게 조절해야 하며 교섭을 둘러싼 국제적·국내적 환경을 현실적으로 파악하고 치밀하게 교섭을 진행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독도는 감정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보령박물관에서 만나는 독도전에는 독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많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독도에서는 멋진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그만큼 절경이 멋들어진 뷰포인트가 많은 곳으로 제주도의 비경에 뒤처지지 않는다. 

독도를 조선의 땅이라고 주장했던 안용복은 사실 아무런 권한도 없는 사람이었다. 조정 관리도 아닌 안용복은 개인으로 일본에 조선땅임을 밝혔다. 그렇지만 안용복의 도일로 인해 조선은 주기적으로 수토사를 파견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울릉도와 독도의 실태를 조사하는 수토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조선의 지리지인 진증동국여지승람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다. 1,500여 년 전에 울릉도에는 독자적인 국가인 우산국이 있었다. 우산국의 역사는 신라 이사부가 정벌하면서 신라의 기록에 남게 되는데 관리가 쉽지 않은 머나먼 섬이어서 독자적인 소국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되게 된다. 우산국은 여진족과 왜국의 약탈로 인해 결국 멸망하고 난 후에 고려의 한 섬인 우산도가 된다. 

독도는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아름다운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작은 섬이지만 치밀하고도 면밀하게 독도라는 대상에 접근하여 잘 활용하는 것이 더 현명한 생각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 스며들게 하면 굳이 우리 땅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독도는 대한민국 DNA에 스며들게 된다. 그 단초는 역사에 있다. 


보령에서 만난 독도

2018.08.31 ~ 11.18

보령박물관 기획전시실

2018년 독도박물관 보령박물관 공동기획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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