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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7. 2018

대나무

오서산에서 길을 잃다. 

살다 보면 생명에만 지장이 없다면 길을 잃는 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좋을 수도 있다. 여행이 인생의 축제가 되는 시간은 언제일까. 이번에 찾아간 오서산의 색깔은 대나무다. 대나무가 나무이냐 식물이냐를 묻는 질문에 식물도 나무도 아니기에 규정지을 수 없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식물로 분류는 되어 있다. 


꽃을 보는 나를 스페인 사람에게 처음 소개할 때는 'Yo soy Coreano'다. 갑자기 스페인이 생각난 이유는 오서산 입구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에서 정열의 색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떤 꽃은 벌써 시들어서 떨어지고 어떤 꽃은 늦게나마 피기 시작했다. 

오서산에서는 가족과 함께하는 숲 해설과 목공예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이날 오서산에서 발견한 것은 대나무다. 누군가는 휴일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는 11월이지만 때로는 눈부시게 아름답게 다가온다. 기분 좋은 가을 날씨를 즐기며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오서산으로 산책을 나선다. 오늘, 오서산 마을의 주민이 되어 자연이 만든 세상을 맘껏 즐기기라. 

마침 공주대에서 나온 학생들이 설문조사를 하고 있었다. 오서산에서 볼거리는 무엇이 있는지 말이다. 오서산은 자연휴양림뿐만이 아니라 침엽수, 활엽수, 대나무, 억새밭, 정암사, 쉰질바위, 명대골 계곡, 청라 은행마을, 귀학송, 보호수인 은행나무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최근 지인이 오서산 정상에 올라가 억새를 보고 내려왔다고 하는데 오서산 산행길은 힘든 코스와 비교적 덜 힘든 코스가 있다. 지인이 선택한 것은 초행길이어서 힘든 코스를 선택해서 올라갔다고 하는데 그날 초주검이 된 것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한계치까지 자신을 몰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을 스스로 들여다볼 수 있다면 지금 나의 한계치를 정할 수 있다. 인생은 계속해서 뭔가를 배우는 과정인데 그중 가장 큰 것이 나를 배우는 과정이다. 

오서산을 여러 번 와보았지만 대나무 숲에는 처음 들어가 본다. 대나무는 하루에도 1미터를 넘게 자라기도 해서 일본 추리소설에서 흔하디 흔한 트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되면 쉼의 질이 결정된다. 

한국에 있는  죽류는 왕대, 솜대, 맹종죽 3종이지만 대부분이 왕대이다. 대나무는 한 번 자란 후에는 굵어지지 않고 굳어지기에 나이테가 없다.  '대쪽 같다'라는 말은 부정과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지조를 굳게 지킨다는 의미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 학자 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와 송죽을 심으며 책을 읽었다는 기록이 있다. 역시 석학이며 문장가인 최치원은 대나무의 가치를 한눈에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대나무는 연평균 기온이 10도 이상이며 연중 최저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고 연간 강우량이 1,000mm 이상인 지역에서 잘 자란다. 

숲 속에서 걷다 보니 해가 너무 짧아졌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해가 지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그 안에 모든 게 있다.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약간 서글프기도 하고, 한낮에 약간 따뜻했다가 조금 지나니 살짝 추워지기도 하는 계절을 지나 나는 계속 가야겠다. 이곳에서 조금더 올라가면 맑은 소리를 내는 범종루 아래를 지나 한 잔에 10년이 젊어진다는 약수를 마시고나면 1600계단이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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