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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6. 2018

한산 이씨

보령 장현리 귀학송

명예를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명예로운 것은 부를 가진 것보다 더 가치가 있지만 현실에서는 명예=돈과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어머니조차 조선이 망하게 된 것이 당파싸움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조선에 대한 역사관은 일제가 심어놓고 초기 정권이 마무리 지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인물들이 나왔고 백성을 사랑하는 관리들도 적지 않았다. 세상이 어지럽고 바람직하지 않다면 출세길도 마다했던 사람이 허다했다. 그것이 명예로운 것이다. 

보령에는 청라면 장현리에 귀학송이라는 나무가 있다. 소나무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특이하게 6가지로 벌어져서 자라고 있어서 육소나무라고도 부른다. 장현리 귀학송은 한산 이씨와 관련이 있는 나무다. 토정 이지함의 조카이며 아계 이산해의 동생인 이산광이 당시 조정에 회의를 느끼고 이곳에 내려와서 살았고 그의 6대손인 이실이 이곳에 소나무를 심고 자라서 오늘날의 이 모습이 되었다. 

한산 이씨는 안동, 제천, 보령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는데 한국에는 크게 두 개의 혈족으로 내려오고 있다.  호장공계(戶長公系) 한산 이씨는  이곡(李穀)의 5대조인 이윤경(李允卿)을 시조로 하며  권지공계(權知公系) 한산 이씨는  이무(李茂)의 3대조로 이윤우(李允佑)를 시조로 한다. 이곳에 터를 잡은 한산 이씨는 권지공계로 모시로 유명한 한산면을 본관으로 이지번(李之蕃)[?~1575], 이지함(李之菡)[1517~1578] 형제가 보령과 연관이 있다. 

보령에는 토정 이지함의 묘가 있다. 한산 이씨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인 지번(之蕃) 밑에서 글을 배우다가 뒤에 서경덕(徐敬德)에게 영향을 받은 이지함은 마포 강변의 흙담 움막집에서 청빈하게 지냈으며 1578년 아산현감으로 부임했을때 부임한 즉시 걸인청(乞人廳)을 만들어 일정한 정착지가 없는 걸인들을 구제하였으며, 노약자와 기인(飢人:굶주린 사람)을 구호하였다.

소나무를 보면 왜 옛사람들이 그 가치를 인정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시사철 푸르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결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한결같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한결같은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소나무의 나뭇결은 투박하면서도 모양이 제각각이다. 나뭇결은 하루하루, 한 달, 1년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삶도 역시 하루하루의 삶의 결이 모여서 만들어진다. 어떤 문양이 될지에 따라 삶에 대한 생각과 태도가 달라지게 된다. 

보령 귀현리 귀학송을 보았다면 지근거리에 있는 화암서원도 둘러보고 청라 호수가 있는 곳을 드라이브하는 것을 추천해본다. 1610년(광해군 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지함(李之菡)·이산보(李山甫) 등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보신 화암서원 역시 한산 이씨와 연관이 있다. 


이곳에서 화암서원을 바라보니 이정구의 팔영이라는 시가 연상된다. 


포구에 때때로 점점이 뜬 배들이 보이더니 (浦口時看點點)

안개 걷히자 노 젓는 소리 속에 말소리 들리누나. (霧開人語櫓聲中)

배를 불러 대궐 소식을 묻고자 하는 것은 (呼船欲問東華信)

이 앞강이 바로 한수와 통하기 때문일세. (爲是前江與漢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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