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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21. 2018

노란 비

하동의 향교

전국의 향교를 돌아다니다가 보면 가장 많이 심어져 있는 나무의 공통점이 있다. 가을이면 황금빛 물결을 만들어내는 은행나무다. 왜 은행나무일까란 생각을 잠시 해보았는데 아마도 오래 살고 주변에 해충이 오지 못하게 하고 가을이면 풍요로운 열매와 노란 비를 내리기 때문이 아닐까. 

하동을 처음 왔을 때는 화개장터와 쌍계사 그리고 섬진강의 젖줄기가 흐르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한참 하동을 가보지 않았다가 하동을 조금 더 알고 싶어서 다시 찾은 길에 하동향교가 첫 기착지였다. 하동향교가 언제 만들어져서 누구를 배향하고 이런 이야기보다는 향교가 무엇인지 말하고 싶다. 향교에서 향(鄕)은 시골이며 마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지역을 의미한다. 지역에서 인재를 키워내기 위해서는 배움이 있어야 한다.

하동향교에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늦가을의 정취가 아직 남아 있지만 가을비처럼 노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향교에서 교(校)는 말 그대로 학교다. 학교란 배움을 바르게 받아들이고 그 가치를 발견하는 데 있지만 지금의 교육이 그런 것인지는 물음표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변화가 있다는데 그를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이 있고, 가까이서 대해 보면 온화하며, 그의 말을 들어보면 옳고 그름이 분명하다. 그것이 배움의 근본이 아닐까.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23호인 하동향교는 1730년(영조 6)에 부사 정덕명(鄭德鳴)이 횡보면 내기동에서 진답면 나동 성전골로 대성전(大成殿)만을 이건 하였고, 1736년 부사 민진기(閔鎭箕)가 현재의 위치로 교궁(校宮)을 이건 하였다. 하동향교는 특이하게 명륜당이 한편의 높은 곳에 만들어져 있다. 정조 때에 공진필(孔晉弼)이 중국에 가서 성묘(聖廟)의 제기와 제복의 제작을 모방하여 돌아왔고 서적 3,000권과 답(畓)을 기증된 곳이기도 하다. 

소인들은 잘못을 저지르면, 반드시 꾸며댄다고 한다. 그것은 어릴 때부터 집안 교육에 달려 있기도 하다. 최근 지인이 약간의 사고가 있었는데 상대방이 큰 잘못은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잘못을 감추기 위해 꾸며대는 것을 보고 부모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한 적이 있다고 한다. 

단청색을 매번 새롭게 칠해야 하고 관리도 해야 하지만 향교가 잘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배움의 가치가 그곳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날마다 자신이 알지 못하던 것을 알게 되고 달마다 자신이 할 수 있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배우기를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제 은행나무 잎도 거의 떨어져서 내년을 기약하며 향교의 옆에서 그 오래됨을 간직하고 있다.  아름다운 관상수로 천년을 넘게 살아남아 전국에 적지 않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도 하지만 이 나무에는 벌레나 각종 세균이 기생하기 힘드니 향교같이 목재 건물에 심어놓는 것이 상당히 좋다. 

외삼문을 지나서 있는 내삼문은 보통 이렇게 내삼문이라고 써놓지 않는데 하동향교는 아주 뚜렷하게 써놓고 이곳을 지나면 대성전이 있음을 알리고 있다. 

하동은 넓지 않은 한적한 곳이다. 하동향교에 올라서서 보면 하동읍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하동은 삼국시대에 신라의 한다사군(韓多沙郡)이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 하동군(河東郡)으로 개칭하고 시간이 흐르다가 지방제도 개정에 의해 1896년에는 경상남도 하동군이 되었다. 


"오직 최상급의 지혜로운 사람과 최하급의 어리석은 사람만은 바뀌지 않는다." - 공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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