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015.11.12
내가 보는 아빠는 하는 일에 비해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다. 하는 일? 대부분의 특수직 공무원들을 보면 권위적이라던가 고정관념이 확고한 경우가 많은데 다른 친구들의 아빠들보다 열린 생각을 가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최근 공무원 정년 문제에 대해 말이 많은데 다행히도 정년 연장으로 앞으로도 6년 이상 근무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만족해하시는 것 같다.
"딸 그동안 만난다는 남자 언제 소개하여줄 거야?" 자식이라도 사적인 것은 웬만하여서 물어보지 않는 아빠가 웬일일까? "얼마나 사귄 거야?" 오이소박이로 젓가락이 가던 나는 잠시 멈추며 "어떻게 알았어?" 그러자 오이소박이를 하나 수저 위에 얹어주며 "그걸 모르면 아빠가 아니지. 한 2년 가까이 되지 않았어?"
"족집게다. 나한테 사람 붙여둔 거 아냐?" 아빠는 호탕하게 웃으며 "그럴 리가 딸 행동이 달라졌잖아. 남자는 모두 어린애라던 딸이 달라진 것 같아. 나는 소윤이가 혼자 늙어 죽는 줄 알았지." 아빠를 흘겨보며 "어차피 사람은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라며?"
"그거야 그렇지만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는 것도 좋지."
"아무튼 아직은 좀 그래요. 오빠가 아직 말하지 못한 것도 있는 것 같고."
"오빠였어? 그래 아빠는 소윤이 믿으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소윤이는 수저를 들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오빠가... 아니야. 나중에 기회 되면 소개도 시켜주고 말도 할게."
"그래 소윤이가 말하고 싶을 때 해." 알았다는 듯이 아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어릴 때 딱 한 번 아빠가 일하던 곳을 가본 적이 있다. 아빠는 자신이 일하는 곳에 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경험해도 괜찮은 것과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다는 아빠의 말이 아직까지 머릿속에 뚜렷하게 남아 있다.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이해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아빠는 항상 날 데리고 다니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역사, 철학 같은 것을 시간만 있으면 이야기해주었는데 항상 나에게 자신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면 원하는 것을 하나씩 들어준다고 했기에 난 공부까지 해가면서 질문을 퍼부어댔다.
어떤 것이든지 막힘없이 대답을 해주다가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그 기뻐하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보통 어른들은 자신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면 얼버무리던가 회피했는데 아빠는 그러지 않았다. 어릴 때는 아빠가 평범한 다른 어른들과 틀리다라고 생각했는데 커가면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할까.
공부는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긴 마라톤이기에 기본 체력만 갖춰지면 언제든지 앞서 갈 수 있다면서 하고 싶은 것을 우선 하라고 하셨던 아빠. 엄마 역시 그런 아빠의 의견에 별다른 이견을 달지 않고 따라주었다. 초등학교 때나 중학교 때까지만 하더라도 상위권에 들어본 적이 없었던 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남들과 다른 속도로 공부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공부는 싫었지만 배우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아빠 소윤이 가요."
"벌써 나가는 거야?"
"응 아빠는 오늘 비번이야?" 책을 읽고 있던 아빠는 책을 잠시 덮고 나를 바라보며 "응 오늘 비번이야. 딸과 언제 또 토론해보나? 남자친구 때문에 바빠서 아빠는 소홀히 하는 거 아냐?"
"설마 그럴 리가 있어? 바쁘지만 시간 좀 내볼게." 아빠는 문 앞까지 마중 나오며 "내 딸이라면 그 정도 인기는 있어야지." 집게손가락을 들어 흔들어 보이며 "으음.. 까칠해서 인기 없어요."
아빠랑 이야기하면 선과 악의 경계선이 모호해짐을 느낄 때가 많다. 절대선과 절대악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는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옳은 것은 그냥 옳은 것 아닌가? 대체 아빠는 인지부조화 같은 것은 어디서 들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괜찮은 대학을 나온 나도 아빠의 의견에 반박하지 못할 때가 많다. 아빠는 자신의 일에 충실하면 되는 공무원 아닌가? 왜 그렇게 생각이 많은 건지...
지하철역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는데 때마침 지하철이 들어오는 보고서야 내가 역에 와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있다니 가끔 놀랍기는 하다. 사각 김밥 전철 같다고 할라나.. 오빠한테 전화하려고 폰을 꺼내다가 그만둔다. 머리가 조금 복잡해졌다. 갑자기 아빠가 보고 이야기하자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버니가 생각난다. 자신이 보살펴주던 성질 더러운 돈 많은 여자를 등 뒤에서 총을 쏴 살해했지만 누구보다도 마을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던 버니의 매력은 무엇일까. 내편이면 선, 반대편이면 악,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가 무섭기도 하고 영원히 사기꾼이 사라질 수 없는 이유 중에 하나... 무조건적으로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인간의 나약한 속성은 어떤 것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오래간만에 숙면을 취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가 보살펴준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어머니 기일이 지나고 나면 한참 동안은 악몽을 꾸지 않는다.
"현아 출근 안 해?" 좀 늦게 일어났나? 시계를 보니 벌써 7시가 넘었다. "출근해요." 방문을 열고 나와 욕실로 가서 양치질을 하고 하고 물로 입 안을 가셔 낸 후 식탁에 앉았다.
"오빠는 일어나서 꼭 양치질하더라." 현은 수저를 들고 "경희야 그거 알아? 현대의 양치질이 일반적인 관습으로 자리한 것은 17세기 말 유럽에서 비롯되었다는 거."
"그런 걸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밥을 입안에 넣은 다음 경희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돌리며 웃는다.
"그건 그렇고 다용도실에 넣어둔 박스는 계속 거기 둘 거니?"
"아 조만간 정리할게요. 그냥 옛날 생각이나서 손대기가 그렇더라고요."
"빨리 치우라는 소리는 아닌데 계속 신경 쓰는 것 같아서..."
아버지가 사형당하면서 남겨둔 성경책과 아버지 소품 몇 개 그리고 어머니 유품이 들어 있는 박스는 버릴 수는 없지만 열어보는 것도 쉽지 않다. 어머니와 나는 이사 간 곳의 중학교에서 2년을 버티지 못했다. 마치 아버지가 부정축재라도 했다고 판단해버린 기자들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좀 더 비참하게 사는 것을 원하는 것처럼 아니 모든 사형수의 가족들이 비참하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았다. 특히 비리 공무원 아니 비리 경찰이라고 세상이 낙인을 찍어주었으니까.
1999년 10월 7일
1997년은 우리에게 많은 시련을 가져다 주었다. 아버지가 사형당했던 해에 IMF 구제금융을 요청하면서 대한민국의 기업문화는 모두 바뀌어버렸다. 어머니가 겨우 잡은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1년 반만인 10월 7일 직장을 나와야 했다. 불행은 한꺼번에 오는 듯 어떻게 알았는지 기자가 악의적인 보도를 하면서 사형을 당한 비리 경찰의 가족이 이사 왔다는 소문이 동네에 퍼졌다.
"그렇게 돈을 많이 받았다며?"
"내가 낸 세금이 저 가족을 먹여 살리는데 쓰인 거 아냐"
"사형당한 경찰의 가족이래."
"비리를 안 자신의 상사를 죽인 거잖아."
"옛날처럼 3족을 멸해야 해."
"그냥 시골에 가서 처박혀 살지.. 저런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살면 집값이 떨어지잖아."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의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나마 동네에 우리를 붙잡아두고 돌팔매질을 안 하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조금씩 알아가던 친구들도 나를 멀리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공부를 얼마나 잘하는 것과 상관없이 선생님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는 척 아니 최대한 접촉을 줄이려는 것처럼 보였다. 흥행한 어떤 영화에서 나온 대사처럼 "느그 아버지 뭐하시니."라고 물어보지 않아도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이었는지 모두 다아는 것 같다.
"현철아 이리와 앉아봐." 학교가 아니라 갇힌 감옥 같던 공간에서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현철아 아빠가 원망스럽니?" 원망? 그런 게 의미가 있나?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언론에서 하는 말만 믿으니까. "생각해본 적 없어요." 어머니는 내 두손을 꼭 잡으며 힘을 지그시 주면서 "엄마는 아빠가 그런 사람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 현철이는 어머니의 눈을 바라보며 그럼 왜 이렇게 되었냐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엄마가 비록 힘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너에게 말할 수 있단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난 현철이가 그거 하나만은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어."
"엄마는 아빠를 원망해본 적 없어?"
"없었어. 아빠가 무슨 일을 어떻게 했는지 왜 그런 상황까지 갔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아니란다."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어떤 사람인데?"
"적어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해할 사람은 아닌데다 경찰이 어떤 일을 해야 하는 존재인지 알았다는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된 건데. 법은 공평하다고 그랬잖아. 아빠가 잡은 사람들이 실제 범인이 맞긴 한 거야? 그 사람들도 범인이 맞다면 아빠도 그럴만하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니야?"
"사람은 모든 것에 완벽할 수는 없단다. 그런데 현철이 이름 바꾸는 건 어떻게 생각해?"
"왜? 갑자기 이름은..."
"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현실에 적응해야지. 엄마야 어쩔 수 없다지만 너는 평범하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모하고 이야기해봤는데 호적도 그쪽으로 올리고 이름도 바꾸면 너는 괜찮을 거야."
"엄마는 어떻게 하고."
"엄마는 괜찮으니까 한 번 생각해봐."
"생각해볼게. 그런데 우리 이사 가야 하지 않아?"
"응 그래서 수원 쪽으로 알아보고 있어." 수원? 서울에서 전학 가면 지방에서는 대부분 받아주니까 가는 건가. "현철이는 어떻게 생각해?" 자신의 두 손을 잡고 고개를 숙이고 있던 현철이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나한테 결정권이 있어?"
"그럼~ 현철이가 싫다면 생각 좀 해봐야지"
"엄마가 편한대로 해. 나야 상관없으니까."
"사회 공헌 활동이 어떤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옛날 우물에서 물을 기르기 위해서는 물을 부어주어야 했습니다. 그걸 마중물이라고 하죠. 마중물 한 바가지에 샘솟듯이 물이 솟아나오는 것이 우물입니다. 사회공헌 활동! 영어 약자로 CSR이죠. 회사가 수익의 일부를 떼서 마중물 금융을 만든다면 사회 소외계층에게 지속적이고 의미 있는 CSR 활동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앤젤리나 졸리의 말을 인용하지 않아도 그들 역시 이나라 미래의 한 조각이니까요." PT가 끝나자 부서장을 비롯한 팀원들의 박수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엄대리 이번 프로젝트는 해볼 만하겠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솔직히 저희 회사의 카드론보다 낮은 이율로 소액금융을 만든다고 했을 때 가능하겠냐는 말들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수익이 선순환 되고 이로 인해 기업의 이미지가 더 좋아진다면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 우선 제시한 대로 3단계로 하고 초기년도 성과를 보자고. 그리고 박 과장! 오늘 점심 같이하는 거 어때?"
"예 그렇게 하시죠."
소윤은 점심시간까지 20분쯤 남은 틈을 이용해 전화를 건다. "Hi..."
"뭐야? 갑자기 영어는."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폰 너머로 들려온다. "말을 해~"
"그냥 기분이 좋아서 그래."
"아 그래서 기분이 High?"
"에이.. 썰렁하다."
"이번 프로젝트 잘될 것 같아.. 그리고 부서장과 점심 식사하기로 했어."
"고민 많이 하더니 잘됐네."
"이번 건 다른 부서와 협조 건이 많아서 조금 골치는 아플 것 같아."
"잘하겠지. 괜찮아... 소윤이 잖아."
"참.. 오빠는 점심 뭐 먹으려고?"
"나 밖에 나왔는데 지인하고 을밀대에서 냉면이나 먹으려고."
"맛있겠다. 을밀대... 담백함 최고."
"엄대리님 지금 나간다는데요?"
"오빠 나중에 통화해.. 냉면 맛있게 먹고."
"그래 너도 맛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