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01. 05
김윤수와 같이 일했던 팀원 중 그 누구도 김윤수의 가족을 찾지 않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하듯이 그들은 누구도 김윤수일에 무관심하고 냉정했다. 살해범으로 잡히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많은 사람들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집에도 자주 찾아 올 정도로 사교성이 있는 사람이었는데 세상이 그를 외면했듯이 그들도 같이 외면당하고 소외당하고 우려하는 것처럼 될까 봐 그랬던 것일까? 그 누구도 속시원히 대답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사형당하기 90일 전 한 명의 사내가 교도소를 찾아와 김윤수의 면회를 요청했다. 가족 말고는 면회를 오지 않았던 김윤수에게 찾아온 사내는 그와 같은 팀에 있었던 민 경위였다. 김윤수 같은 수형자는 사형이 확정되었지만 형의 집행이 안된 경우는 미결수이다. 사형수는 죽어야 그 형의 집행이 완료가 된다. 사형을 기다리고 있기에 면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일주일에 딱 한 번 10분 정도 밖에 허용이 되지 않는다. 수척해진 얼굴로 교도관의 인도를 받으며 면회방에 들어온 김윤수는 면회인을 쳐다보며 "민 경위 아냐? 여긴 어쩐일로 왔어. 내가 아무도 오지 말라고 그러지 않았나?" 민 경위는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걱정돼서 찾아왔어요. 선배 괜찮아요?"
김윤수와 민 경위와의 인연은 벌써 18년째이다. 같은 대학의 검도부에서 운동하면서 선후배 사이로 만나게 되었다. 검도에 매진하다가 김윤수가 먼저 경찰시험에 응시해 합격하고 다음해에 민 경위가 경찰이 되었다. 같은 경찰서에서 오래도록 생활하다가 민 경위가 다른 경찰서로 발령되어 떨어졌지만 자주 만나서 서로 교류를 지속해왔다. 그러던 중 2년 전 큰 사건의 기획수사 때문에 차출되어 합류하게 된 것이었다.
"뭐가? 사형이 확정된 걸 물어보는 거야. 지금 있는 곳이 어떠냐고 물어보는 거야."
"두 가지 다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차피 예상한 일이잖아. 그런데 익숙해지지는 않네."
"왜 그러셨어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한숨을 내쉬며 김윤수는 민 경위를 가만히 쳐다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어. 그리고 그 방법이 최선이었고. 누군가는 했어야 하잖아."
"그게 하필이면 선배예요?"
"그게 최선이야. 어차피 벌어진 거 그만하자."
"부인과 자식한테 미안하지는 않아요?"
"미안하지. 못난 사람을 남편으로 그리고 아버지로 둔 후폭풍이 꽤 클 테니까."
"지금 힘들어하는 것 같던데요."
"너까지 신경 쓸 필요 없어. 어차피 되돌릴 수도 없는 일이고 어쩌겠어 감내할 수밖에. 민 경위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우리 가족한테 신경 쓰지 말고 지금 하고 있는 일 열심히 하라는 거야. 그리고 먼 훗날 만약 내 아들이 민 경위를 찾아가면 그땐... 그땐... 도와줄 수 있다면 도와줘." 민 경위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김윤수를 쳐다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 말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선배 말대로 할게요. 그리고 올해만 잘 버티면 사형집행이 무기한 연기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돌던데요. 올해만 잘 버텨봐요."
"글쎄. 이례적으로 대법원 판결도 빨리 나올 테고 올해를 넘기지 않고 사형 집행이 한 번 있을 거야."
"선배가 포함이 안될 수도 있잖아요."
"너무 큰 희망을 가지지 마. 그건 그렇고 팀원들은 어떻게 됐어?"
"최경정은 경찰대학교로 들어갔고요. 저는 분당서로 발령 났습니다. 그리고 김 경사와 박 경사는 일산과 의정부로 갔습니다."
"결국 그렇게 됬구먼. 시간 되면 박 경사 좀 찾아가봐. 아무래도 여자니까 충격이 더 심했을 거야."
"예 그렇게 할게요."
10분이라는 시간은 야속하게도 빨리 지나가버렸다. 가족 외에 유일하게 면회를 한 민 경위가 가고 난 90일 뒤 김윤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1997년에 국가안전기획부장의 직급은 장관보다 높은 부총리급이었다. 중앙정보원정도까지의 위세는 아니었지만 부총리급인 안기부장이 이끄는 안기부는 상당히 파워가 큰 조직이었다. 그 조직은 1999년 국가정보원으로 변경되면서 정보원장의 직급이 장관급으로 내려가며 정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위축이 되었다.
"똑똑 도진수입니다. " 대공수사실을 맡고 있는 103실 황차장 집무실에 사람이 찾아왔다. 모니터 화면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황차장은 문쪽을 바라보며 "들어와" 도진수는 들어가며 깍듯이 인사를 한다. "알아보라는 것은 어떻게 되었어?" 황차장의 책상 앞으로 가더니 사진 여러 장을 놓았다.
"이게 누구야?
"아 같은 팀에 있었던 민 경위라는 친구입니다."
"그래 뭐 별일 있었어?"
"그냥 안부 좀 묻고 돌아갔습니다."
"한동안 그 팀원들 이었던 사람들 예의 주시하고. 그 사건 담당하고 있는 부장검사가 장명수지?"
"예 그렇습니다."
" 대법원에서 기각하는 거 빨리 처리하고 사형 집행하는데 문제없게 빨리 확인해봐."
"예 알겠습니다." 사진 정리해서 도진수에게 건네주며 "나가 봐. 변동사항 생기면 즉각 보고하고." 도진수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인사하고 돌아서서 나간다."
드디어 새 천년을 맞이했다. 올 것 같지 않았던 2000년의 첫 해가 뜨고도 5일이나 지났다. 새천년에 중학생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이제 새롭게 시작을 할 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빠는 사형을 당한 사람의 가족을 후에 다시 찾아보는 것을 자신의 책무처럼 생각해왔다. 마치 외국에서 장의사가 그 유가족을 찾아가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아빠가 나를 데리고 그 가족을 찾아간 것은 세 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가족과 직접 대면한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도움이 되는 것을 했던 것 같다. 사형수의 가족을 찾아간 마지막 날은 2000년 1월 5일이었다. 그날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말하기는 그렇지만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었기에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수원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방에서 올라오면서 보는 수원 IC나 TV에서 수원화성 관련 영상이 나올 때나 가끔 접했던 곳이지 수원을 갈일이 없었기에 그곳은 아직은 낯선 곳이었다. "아빠. 수원은 갑자기 왜?" 운전을 하던 아빠는 잠시 소윤이를 쳐다보며 "아마도 이번 여행이 낯선 가족을 보려고 소윤이를 데리고 가는 마지막 일거야."
"그런데 왜 날 데리고 가는 거야?"
"소윤이도 나중에 크게 되면 소윤이 입장에서 절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을 이해해야 할 때가 올 거야."
"절대 이해하지 못할 사람을 왜 이해해야 되는데?"
"우리 사회가 살기 좋게 변하려면 그래야 할 때가 있어." 소윤이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으로 가만히 있는다.
"소윤아. 남을 용서한 만큼, 자신도 용서를 받는 거고 남을 도와주는 것은 나를 도와주는 거나 다름이 없는 거야. 자신이 한 행동은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니까."
"어려워. 어려워. 아직은 잘 모르겠어."
수원의 한 주택 골목가로 들어간 아빠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빌라를 쳐다보고 있었다. 20여분쯤 지났나 한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우리와 반대쪽으로 무언가 들은 검은색 비닐을 들고 사라졌다. 아빠는 부동산을 찾아가 어떤 빌라 이름을 물어보고 주인이 누구인지 확인하였다. 빌라 주인인 것 같은 사람에게 전화하더니 우리는 근처의 커피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30여분쯤 기다렸을까? 빌라 주인처럼 보이는 아저씨 한 분이 들어오자 아빠는 손을 들어 수신호를 하였다.
"전화하신 분인가요?"
"예 제가 전화드렸어요."
"제가 평화빌라의 주인인데요. 어쩐일로 그러시는 거죠?"
"다름이 아니라 그 빌라 302호에 아주머니 한 분하고 중학생 한 명이 살고 있는 거 맞죠?"
"예....그런데요...어쩐일로."
"월세 같은 것은 안 밀리나요?"
"그건 왜요?"
"아 제가 부군에게 돈을 빌린 것이 조금 있었는데 지병으로 세상을 뜨셔서 이렇게나마 찾아뵌 거예요."
"그래요? 그렇지 않아도 생활이 어려운지 2달이나 밀린 상태예요."
"월세가 얼마나 되죠?"
"그 방이 월에 30만 원이죠."
"계좌번호를 하나 적어서 주세요. 제가 1년치를 넣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면야 저야 고맙죠. 사정도 딱하고 해서 말하기도 그렇더라고요." 종이 하나를 꺼내더니 자신의 계좌번호를 적어서 아빠에게 건네준다. 아빠는 언제 그 사람에게 돈을 빌린 거지?
"제가 '새로운 시작'이라는 이름으로 무통장 입금해드릴 겁니다."
"그런데 물어보면 뭐라고 하죠?"
"아 예전에 부군에게 300만 원 정도를 빌린 적이 있었는데 3년 만에 갚은 거라고 말해줘요. 굳이 이름을 말하기도 그러니까요."
"예 알겠습니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일어서면서 "그럼 이만." 아빠의 손에 이끌려 걸어나가며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 돈 빌리는 거 싫어하잖아?"
"마음의 빛이라 해두자." 커피숍의 정문을 나서서 차가 세워져 있는 오른쪽 방향을 틀자. 그들 옆으로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현철이가 소윤이 곁을 스치듯이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