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015.11.13
이번 달의 기획기사는 '복수'를 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들의 억울함을 다뤄야 한다. 2년 전 연쇄살인범이 막 잡혔을 때 사형제도를 사실상 반대하는 논지의 글을 실은 후 엄청난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다. 네티즌들은 익명성을 이용하여 나에게 융단폭격을 해댔다. 나의 페이스북은 온갖 욕설이 넘쳐났고 근거 없는 소문은 퍼져나갔다. 그 악몽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 같다. 복수를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 현대문화나 콘텐츠로서 접근해야 할까? 부정적인 감정으로 복수가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긍정적인 감정의 용서라는 것이 존재한다. "오빠!" 어디선가 들려오는 친근한 목소리에 깊숙한 사색의 우물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건져졌다. "응?" 소윤이는 나를 흘기듯이 쳐다보며..."이번 프로젝트 잘된 거 축하하는 자리 아니야? 나 누구랑 있는 거야?" 현은 겸연쩍게 웃으며 소윤이의 손을 잡는다.
"미안. 이번 기획기사 때문에 잠깐 생각했어."
"잠깐이 아닌데? 한 5분은 혼자만의 세상에 빠져 있었어. 뭔데? 이번 기사 주제가?" 손을 휘휘 저으며 "너까지 신경 쓸 거 없어."
"이야기나 해봐.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
"흠.. 소윤이가 오빠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이긴 해. 그럼 물어볼게. 복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복수? 어떤 복수를 말하는 거야? 개인적 복수, 공공에 대한 복수, 사사롭게 연인 사이의 복수.. 많잖아."
"그냥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선 복수를 하는 사람은 세상에 정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어떻게 방향을 잡으려고 그러는 건데?"
"내가 생각하는 것은 범죄의 범주에 속하는 사사로운 복수 말고 현실에서는 분명히 범죄가 되는 걸 말하는 거야. 합법적인 것이 아닌 복수는 분명히 범죄이긴 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복수를 적어도 한 번쯤은 생각할 거야. 예를 들어 그 유명한 다단계 사기범에게 복수를 하고 싶은 사람이 한두 명은 아닐 거야."
"그래서 복수는 사회적인 현상이라는 거야? 얼마 전에 기사 본 것이 기억나는데 한국의 사법신뢰도가 42개국 가운데 39위를 차지했대. 실제로 주변에서 직접 겪어본 사람들 보면 긍정적인 경우가 없었던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이 복수하는 영화에 열광하는 것 같아. 복수는 나의 것, 방황하는 칼날, 살인 의뢰,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 악마를 보았다, 공정사회, 어떤 살인, 브레이브 원 등등 복수를 다룬 영화는 잠깐 생각해도 이 정도야."
"그러게. 오빠랑 그런 영화도 몇 편 본 기억이 나네.. 친절한 금자 씨, 올드보이, 모범시민.. 아 모범시민은 모순이 있는 사법제도를 비틀어서 더 색다르게 느껴졌다고 하나."
"분명히 사법제도가 인간사의 모든 복수를 대신해주고 있지 않는 건 사실이야. 사회가 비틀리고 공정하지 않을수록 그런 영화가 인기를 끄는 것 같아. 정부조직에서 쓰이고 버려진 첩보원의 이야기를 다룬 본 시리즈나 법이 다가갈 수 없는 영역에 직접 자신이 일을 해결하려고 나선 테이큰 시리즈도 큰 인기를 얻었잖아. 현실에는 불가능하지만 그들은 통쾌하게 복수하고도 멀쩡하게 잘 살잖아. "
"그럼 그렇게 써봐. 용서 없는 사회! 복수를 권장하는가! 그리고 영화랑 현대 사회에서 일어난 일과 적당하게 믹싱 하면 되지 않을까?" 소윤이의 말을 들은 현은 고민하듯이 생각하다가.."아무튼 의견 고마워. 그 방향도 괜찮을 것 같아. 요즘 주변 사람들 보면 가슴에 묵직한 것을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나 다 먹었어. 나갈까?" 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클러치백과 외투를 챙기면서 일어섰다.
소윤이와 2차로 간단히 누구나 즐긴다는 크림 생맥주를 한 잔 마시러 움직였다. 서울은 항상 사람이 북적거린다. 어디서 흘러나오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곳저곳으로 흘러 다닌다. 이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갈까. 날씨가 제법 쌀쌀해져서 그런지 외투 속에 잡은 소윤이 손이 따뜻하다. 2년이나 지났지만 손만 잡아도 그 사람의 생각이 느껴지고 온몸의 피곤함이 눈 녹듯이 날 감싸주는 여자. 소윤이는 그런 여자다. 뭐가 그리 바쁜지 빠르게 자신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 우리만 슬로우 모션처럼 걸어간다. 언제 그런 말을 한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하게 된다면 결혼식은 그렇게 특별하게 하지 말자고 소윤이와 합의를 봤다. 결혼식 하는 날만이 특별한 날이 아니라 오늘, 내일, 모레, 1주일 후, 한 달 후 언제든지 같이 하는 날은 특별한 날로 생각하고 살아가자고 말이다. 죽는 그날까지 우리가 보내는 하루는 항상 특별한 시간이고 그날만의 특별함을 담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소윤이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사랑스럽고 내일보다 모레가 더 사랑스러울 것이라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소윤이는 내 상상처럼 더 사랑스러워지고 더 예뻐졌다. 누가 말하면 미쳤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근처의 복고식 인테리어를 해놓은 다소 촌스러운 맥주집으로 들어갔다. 복고가 유행이었다가 한순간에 사라지곤 했는데 이번에는 꽤 오래가는 듯하다. "소윤이 뭐 마실래?" 메뉴판을 들어서 보여주며 물었다. "흠... 그냥 크림생 한잔?" 메뉴판을 자신 앞으로 가져온 현은 메뉴판을 위에서 아래로 흩다가.. 잠깐 멈춘다. "안주는 먹태 어때?" 소윤이가 갑자기 앞으로 다가오며 "오빠 나 잘 알잖아. 명태, 노가리, 북어, 동태, 생태 등등.. 모두 좋아해 그러니까 먹태도 당연히 좋아하겠지?" 종업원을 부르기 위해 손을 들면서 현은 넌지시 소윤을 바라본다. "혹시나 해서... 전주 가서 먹은 전주가맥의 황태가 갑자기 생각나네." 소윤이는 박수를 치며.. 날 가리킨다. "맞다! 그거 정말 맛있었는데 오빠가 운전해야 해서 나만 맥주 한잔 마셨던 곳."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인다. "그 매콤하면서도 느끼한 묘한 감칠맛 나는 그 소스가 특이하지."
2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앳된 보이지만 얼핏 보면 아이유를 닮은 아르바이트생이 다가오며 "예 손님 뭘로 드릴까요?" 메뉴판을 아르바이트생에게 주며 "여기 크림 생맥주 두 잔 하고 먹태 주세요." 아르바이트생은 손에 있는 종이에 적으며 "크림 생맥주 두 잔하고 먹태 맞으시죠?" 현은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젠 소윤이 이야기해볼까? 준비 많이 하더니 잘되었나 봐." 소윤이는 마카로니를 하나 집어서 입안에 넣고 먹으면서 나를 바라보며 말을 시작했다. "색깔 이야기가 먹혔나 봐. CSR 4色 의 유혹..." 현 역시 마카로니를 하나 집어서 먹으면서 "색이라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도 었었을 텐데 어떻게 잘 기획했나 봐." "CSR이 그만큼 매력적인 것으로 유도한 거지. 누군가를 도와주는 그냥 무채색의 그런 느낌이 아니라 확실하게 우리 기업만의 색깔을 가지자는 것으로 접근했어." 아까 본 아이유 닮은 아르바이트 생이 크림 생맥주를 두 잔 가져와서 우리 앞에 놓아주었다.
"그러게.. 그거 잘못했으면 4色이 아니라 死색이 되었을 텐데 말야."
"그게 무슨 말이야?.... 아~~ 하여간 그쪽에서 일하는 사람 아니랄까 언어유희는..."
"유희는 조선시대 실학 자고."
"그만..." 소윤이는 맥주잔을 들고 짠하자는 듯이 들어서 앞으로 내민다. 아무 말없이 맥주잔을 살짝 부딪친 후 맥주를 목으로 넘긴다. 크림 생맥주는 목넘김이 좋아서 좋다. 부드럽게 넘어가면서 속에 알코올기가 살짝 감돌면서 뒤통수의 찡한 그런 느낌은 첫 잔에서만 느낄 수 있다. 지금까지 마신 맥주 중에 최고의 맛은 군대 있을 때다. 종교행사 중 유일하게 밖으로 나가는 천주교를 가게 되면 밖에서 캔맥주를 한 캔 마실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그때 마신 한 캔의 맥주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나오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맥주'에 비견될 만하지 않을까?
"소윤아 이 맥주 보니까 갑자기 쇼생크 탈출이 생각난다." 소윤이는 맥주 한 모금을 삼킨 후 맥주잔을 바라본다. "거기서 이런 대사가 나오거든 마치 우리는 자유인처럼 맥주를 마셨다. 부러울 게 없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아~~~ 기억나는 것 같아. 난 수감자들이 즐겁게 술을 마신느 것보다 술을 마시지 못하면서 그걸 보고 즐거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더 인상 깊었어."
여느 연인들처럼 시간은 야속하게 빨리 지나가버렸다. 살짝 취기가 오르는 느낌이 들었을 때의 시계를 보자 시계는 11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갈까?" 소윤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옷과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면서 일어섰다. "오빠 여긴 내가 낼께." 현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맥주집을 나갔다. 소윤이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으로 결제기에 댄 후 비밀번호를 입력했다. 결제가 완료되었다는 문자가 뜨자 "예 결제되셨어요. 안녕히 가세요." 가볍게 목례를 하며 나오는데 현이 맥주집의 문을 열어준다.
"지하철 타고 갈 거지?"
"응 그게 가장 편하잖아. 술냄새 안 나려나?" 현은 소윤이 입 쪽에 코를 대더니 "거의 안 나는데?"
"오빠도 술 마셨잖아."
"그런가? 지하철역까지 데려다 줄게." 소윤은 말없이 현의 품을 파고들면서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소윤이를 보내고 오는 길에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가끔 나를 감시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민간인 사찰 같은 것은 없다고 몇 번이나 정부에서 발표한 적이 있지만 국가정보원이나 기무사 같은 특수조직들이 무얼 하는지는 정확하게 밝힌 바 없으니 몰래 누굴 감시한다 해도 알 길은 없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사람들을 관찰하면 별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보통 아침이나 낮에는 80% 정도는 모두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게임이나 카톡 같은 것으로 끊임없이 엄지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이지만 이렇게 밤 12시가 다 된 시각에는 스마트폰의 활용도가 60% 정도의 수준으로 떨어진다. 우선 잠에 빠져 목을 가누지 못하고 고개 행진곡을 연주한다. 탁월한 작곡가가 있다면 제각기 잠에 빠져 컨트롤이 안 되는 목을 가누느라 바쁜 현대인들의 고개 행진곡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건너편 지하철 칸에서 예리한 눈빛으로 나를 주시하던 남자는 내가 고개를 돌리자 이내 고개를 돌리며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소윤이에게 잘 자라는 문자를 보내고 침대에 누었지만 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20여 분간 뒤척이다가 책상에 놓여 있는 맥북의 스페이스바를 눌렀다. 최근 업그레이드한 맥 OS X 엘케미탄은 매모앱은 나에게는 무척 편리한 기능을 제공해주었다.
"왜 사람들은 복수에 열광하는가 : 사적인 복수를 꿈꾸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한 나라의 복수지수를 잴 수 있다면 아마 사법신뢰도와 반비례하지 않을까.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은 너무나 많다. 그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것이 잡아서 넣는 정도일까? 영화에서 주인공이 하는 복수는 짜릿하다. 어떤 사람들은 과감하게 복수로 행동을 옮기는 반면 망설이다가 어쩔 수 없이 자기 감정에 북받쳐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한다............
........ 당연히 복수는 범죄다. 더 삭막해지고 가혹해진 세상에서 사람들의 복수를 대신해주는 그런 영화라도 없었다면 버티기 힘들지도 모른다. 신체의 모든 부분에 피가 돌아야 제기능을 하듯이 법의 온기가 위에서 서민에게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면 사회는 제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이 악순환은 또 다른 범죄를 양산할 수 있다. 오늘도 당신은 복수를 꿈꾸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