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 조선을 움켜쥔 날

계유정난 그날 용이되어 날아오르다.

수진 :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조선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인 한명회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성현 : 단적으로 말하면 세조와 한명회를 비롯한 권신들은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면 단종과 사육신과 생육신은 비극적인 삶을 산 것이잖아.

소희 : 한명회를 말할 때 먼저 국가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 고조선 이후에 한반도는 그 주인이 바뀌었지만 한 번도 국가가 없었던 적은 없었거든. 국가란 사람들의 모든 것을 대표할 한 사람을 내세운 뒤, 그 1인에게 모든 판단을 맡기는 거지. 조선은 태조 이성계를 그 대표자로 내세운 뒤 계속 그 후손이 그 역할을 맡아 왔는데 문제는 적통이나 왕이 된 사람 외에 왕족들은 모두 신하라는 점이야. 수양대군은 단종에게 충성을 하기로 한 신하로 계약을 했지만 이후 계유정난으로 자신이 권력을 움켜쥔 거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계약을 위반한 거지.

주만 : 그냥 왕이 되고 싶으니까 난을 일으킨 거잖아. 그리고 수양대군의 세력이 워낙 컸으니까 한명회도 그 편에 서 있는 거였고.

소윤 : 소희 언니가 말하는 사회계약은 홉스가 말한 거 맞죠? 사회계약이 실현되고 모든 개인이 한 사람의 인격으로 통일되었을 때, 비로소 국가가 성립된다.

소희 : 맞아! 사회계약설

진수 : 오늘 한 명회묘를 보러 가는 거 아냐?

수진 : 응 지금 출발하자. 소윤아 주소는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속창 3길 62'을 찍고 가면 돼.


MG0A4630_resize.JPG 한명회 사당으로 들어가는 상당문

소윤 : 이런 외진 곳에 한명회 사당과 묘가 있는지 몰랐네요. 상당부원군 한명회라..

주만 : 이곳은 상당히 넓은 편이네. 저곳이 사당이고 위쪽에 있는 것이 묘인가 보네.

진수 : 조선을 다룬 드라마 중에서 신하가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많이 없었던 것 같은데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사람이 한명회인 거 같아. 재물, 권세, 명예 세 마리 토끼도 모두 잡고 세조, 성종, 연산군, 인수대비 같은 조선 역사에서 큰 획을 그었던 사람들과도 연관된 사람이니까.

수진 : 한명회라는 이무기가 용이된 날은 1,453년 바로 계유정난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알리고 권력을 쥔날이지.

성현 : 내가 지난번 방학 때 터키 이스탄불을 가본 적이 있었는데 정말 아름다웠거든.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이스탄불이 만들어지게 된 해가 계유정난이 일어난 해였더라구.

소희 : 시기적으로 따져보면 맞겠다. 메호메드 2세가 비잔틴 제국을 무너트리고 비잔티움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이스탄불로 바꿨지. 맞아! 터키의 아름다운 도시 이름 이스탄불이 그때 만들어졌네.

수진 : 서양사에서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은 유럽사를 중세와 근세로 나누는 기점이 되는 것처럼 초반의 불안한 정국을 본격적으로 안정시킨 것이 아이러니하게 세조가 집권하면서부터야.

소윤 : 그럼 단종이 계속 집권했다면 조선왕조가 안정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수진 : 글쎄. 단적으로 말하기는 힘들겠지만 단종이 왕위에 올랐을 때는 신권이 강했던 것은 사실이야.


MG0A4633_resize.JPG 한명회의 사당인 충모사


성현 : 그리고 계유정난과 세조의 집권 시기에 훈구파가 조선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때이기도 하지.


한명회 -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한명회는 자는 자준이며 호는 압구정으로 태종 15년(1415)에 태어나 성종 18년(1487)까지 살았던 인물이다. 한명회 주변의 지인들은 일찍이 과거에 급제해 조선 정계에 입문하여 활동했으나 연이어 과거에 실패한 한명회는 조상의 음덕으로 문종 2년 (1452) 38세의 나이에 경덕궁의 문지기로 일하게 된다. 이후 수양대군을 만나 거사를 논의하다가 그를 따르는 추종세력과 함께 1453년(단종 1) 10월 계유정난으로 권력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수진 : 계유정난만 있었다면 그만큼의 위세는 누리지 못했을 거야. 한명회에게 날개를 달아준 사건이 발생하지. 1455년(세조 1) 10월경 책명사인 명나라 사신이 온다고 통고한 뒤 약 8개월 뒤인 1456년 6월 초하루 창덕궁의 초대연 자리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거사계획이 실패하면서야.

성현 : 일명 단종 복위 운동으로 불리는 거사계획이야.

소윤 : 그 사건으로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등이 처참되어 사육신으로 불린 거잖아요.

주만 : 나도 사육신 이야기는 잘 알지.

소희 : 사육신이 누군데?

주만 : 소윤이가 말했잖아.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그리고 두 명.

소희 : 그리고 두 명?

주만 : 그래야 여섯 명이잖아.

수진 : 나머지 두 명은 유성원과 유응부야.


1456년 6월 실행하기로 했던 단종 복위 운동은 행동책을 맡은 별운검(別雲劍 : 임금의 신변을 호위하는 임무를 맡은 무신)이 한명회의 의심으로 인해 갑자기 제외되어 거사 계획은 실행 일보 전에 일단 실패하게 되었다. 이에 거사 주동자들은 거사 계획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있었는데, 동모자의 한 사람인 김질(金礩)과 그의 장인 정창손(鄭昌孫)의 고변으로 사육신과 그 밖의 연루자가 모두 처참(處斬)되고 거사는 실패로 돌아간다.


MG0A4634_resize.JPG 한명회 선생 신도비

성현 : 시대를 막론하고 난세일 때 영웅이 나온다는 것은 맞는 말 같아. 판을 뒤집지 않고 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잖아.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

소윤 : 한명회는 보기 드물게 리좀식 사고에 능숙했던 사람은 아닐까요?

주만 : 리좀식 사고? 그게 뭔데?

소윤 : 보통은 나무 기둥을 만들고 나뭇가지가 뻗어나가는 트리형 사고를 많이 하잖아요. 반면에 리좀식 사고는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거죠. 수평적이며 다양하고 어디서 시작될지 모르지만 무척 다양하다는 것이 장점이죠. 그리고 매우 유연해요.

진수 : 그러니까 소윤이가 하는 말은 조선왕조가 태조 이성계 - 정종 - 태종 - 세종 - 문종 - 단종으로 이어지는 중심에서 벗어난 나뭇가지인 수양대군이 왕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리좀식 사고다?

소희 : 그럴 수도 있겠네. 세조 이전까지는 왕위 찬탈 같은 것을 시도한 적은 없었잖아. 시대가 변하면 그것과 함께 변화해가는 것이고 단절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뭐 그런 거지.

수진 : 흥미로운 시각이네. 단종을 복위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반역이겠지만 말야.


MG0A4638_resize.JPG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 되었다가 다시 신원된 한명회 묘

성현 : 살아 생전에는 엄청난 권세를 누렸던 한명회도 사후에 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된 걸 보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거 같아.

주만 : 영화 관상에서 본 것 같은데 관상가가 목이 잘릴 운명이라고 말야. 그런데 죽은 한명회를 부관참시한 이유는 뭐야?

수진 : 연산군이 왕위에 있을 때 신하들이 연산군에게 한명회도 연산의 생모 윤씨의 폐비에 동조하고 사약을 내리는 과정까지 묵시적 동의를 했다는 것을 진언하는데 의금부가 이를 받아들여 부관참시하겠다고 보고했어. 그래서 청주에 있는 한명회의 관을 쪼개 머리를 벤 거야.

진수 : 보통 그런 사람은 명당에 묻히잖아. 명당은 스스로 보호한다고 했는데 그럼 한명회가 묻힌 곳은 명당이 아닌 걸까?

성현 : 명당이었지만 무언가 하나가 부족했을 수도 있지.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소윤 : 전 사람을 이렇게 구분할 때가 있어요. 죽음을 의식하는 사람과 의식하지 않는 사람이요.

주만 : 그 차이가 뭔데?

소윤 : 죽음 두려워야 할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거죠. 죽음을 의식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사람은 진심을 다해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만 그냥 죽음이라는 것을 나와 관계없는 그냥 멀리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삶을 소모하는 것 같아요.

성현 : 어떤 관점으로 보면 한명회를 보면 간신처럼 그려지기도 하지만 한명회의 행적을 보면 정말 인생을 진심진력을 다해 살았던 사람인 것은 맞아.

소희 : 한명회의 삶에 대한 태도는 죽음을 자각하고 자신의 삶의 그 순간을 잘 포착했다고 볼 수 있지. 그렇지만 미래를 막연하게 받아들이고 현재를 살아간다면 죽음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거잖아. 그 결과 유한하다는 우리의 삶을 잊어버리게 되니까 하루하루가 그냥 흘러가는 거고 그러다 보면 늙는 거잖아. 늙고 나서야 인생 부질없다고 깨닫게 되니까.

주만 : 너희들 20대야. 그런 말 하기에 너무 이른 거 아냐.

수진 : 그냥 우리가 같이 여행하고 이런 이야기 나누는 것도 시간을 의미 없게 보내는 거잖아.

진수 : 그래 그건 맞는 것 같아. 집에 가자.


계유정난으로 본격적인 벼슬길에 오른 한명회는 군기녹사, 사복시소윤, 동부승지, 도승지, 이조판서, 병조판서, 상당부원군, 좌의정, 영의정, 익대공신 등 웬만한 요직은 모두 두루 거쳤다. 왕비를 두 명이나 배출했던 한명회는 1487년에 세상을 떠난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17년 만인 1504년(연산 10) 4월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를 당하지만 중종 때 다시 신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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