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소통했던 다리

강경 미내다리, 원목다리

진수 : 수진아 젓갈 사러 강경으로 가는 거야?

수진 : 응 엄마가 김장 때마다 강경에 가서 젓갈을 사 왔는데 이번에는 내가 갔다 온다고 했어 간 김에 너희들이랑 미내다리랑 원목다리도 보고 오려고.

주만 : 왜 우리들이랑 같이 간다고 했는지 알겠네. 강경 젓갈이 괜찮다는 것은 들어본 것 같아.

성현 : 옛날에는 강경이 조선 교역의 중심이기도 했었어. 그래서 유서 깊은 돌다리가 남아 있는 거잖아.

소희 : 조선시대에도 경영학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성현 : 상업이 천대받았었으니까. 상술을 있었을지 몰라도 경영학이라는 것인 근대화된 이후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고 봐야지.

진수 : 지금 많이 알려진 경영학의 큰 줄기는 독일경영학과 미국 경영학으로 각기 장단점이 있어. 그중 독일경영학의 태동은 바로 1675년에 출판된 사봐리의 “완전한 상인”이라고 보고 있대.

수진 : 진수는 건축과 아니었어? 경영학도 아네.

진수 : 그냥 상식 수준이야.

수진 : 강경 미내다리는 조선 영조 7년 (1731)에 건립되었다고 비문에 적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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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미내다리 : '여지승람'에 미내다리가 있었는데 조수가 물러가면 바위가 보인다 해서 조암교라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미내교는 이곳 하천의 지명인 미내천이라는 데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다리가 있던 곳이 바닷물과 서로 만나는 곳에 위치한 것이다. 부서진채 남아있던 은진미내 교비는 현재 부여박물관으로 이동하여 보존되고 있다.


진수 : 돌다리가 석재만을 이용해서 아치형으로 만들어졌는데 꽤 잘 만든 것 같아. 보면 무게에 대한 수학적 계산과 역학적 구성이 돋보이는 구조물이야. 그 시대에도 토목 건축술을 잘 활용했다고 봐야지.

수진 : 나도 건축은 잘 모르지만 꽤나 견고해 보여.

성현 : 영조 시대에 송만운이라는 사람이 주축이 되어 1년여에 걸쳐 만든 것으로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가장 큰 대교였대.

소윤 : 그런데 이 정도 크기의 다리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했었을까요?

수진 : 아니야 이 미내다리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이어주었던 다리야.

주만 : 딱 봐도 다리가 그렇게 크지는 않잖아.

성현 : 지금처럼 큰 대교가 필요할 정도로 교류가 많지는 않았으니까 주요 길목에 다리가 만들어졌었어. 이 미내다리는 정월 대보름날에 많은 사람들이 무병장수와 소원성취를 빌고자 답교놀이를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보부상 같은 상인들이 이곳을 건너 넘어가기도 했어.

수진 : 과거를 보기 수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건너가기도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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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윤 : 질문! 어떻게 보면 다리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해주는 소통의 의미잖아요. 왜 계속 사람들은 공간적으로 지역적으로 연결되려고 할까요?

주만 : 심오하네. 미내다리를 보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소희 : 내가 생각하기에는 세상은 항상 흘러가려는 그런 성질이 있는 거 같아. 그래서 다른 지역과 다른 지역으로 문화가 퍼져나가고 문물이 퍼져나가게 되는 거지. 요즘 사람들은 그걸 트렌드라고 하잖아.

수진 : 그래 맞아. 충청도 사람들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런 흐름이 전라도 사람들에서 느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래서 이런 미내다리라는 것이 중요한 거고.

성현 : 생각해보니 그러네. 이런 오래된 다리를 보면서 어떤 이는 그냥 옛날 사람들이 만든 고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바라보는 사람은 이 다리에서 지금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배우는 거잖아.

진수 : 소윤이가 하는 좋은 질문은 가치 없는 답을 이긴다.

소윤 : 그 정도로 심오하지 않아요. 언니 오빠들이 잘 끌어내 줬을 뿐이지.

수진 : 이제 원목다리로 가보자.

주만 : 또 이동해야 되는 거야? 얼마나 먼데?

성현 : 얼마 안 걸려. 조금만 가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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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만 : 이 다리는 미내다리보다 더 작네?

성현 : 강경에는 이런 돌다리가 두 개가 있는데 홍예교라고 불리는 미내다리와 원향교라고 불리는 원목다리야. 원목다리가 미내다리보다는 조금 작지.


원목다리 : 한자로 원향이라고 적는다. 나그네가 쉬어가는 집 겸, 쉴 목을 이르는 말이다. 공주에서 전주로 가려면 이곳을 지나쳐 가야 한다. 비교적 잘 알려진 미내다리와 비슷한 시기에 건축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다. 세 개의 무지개형 짜임새인 홍예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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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 : 이곳 논산 사람들에게 자랑이 세개가 있대. 맞춰봐. 무엇일 거 같아?

주만 : 이쯤 해서 물어보면 원목다리가 들어가는 것이 맞지?

소윤 : 전 아까 본 강경 미내다리는 들어갈 것 같아요.

성현 :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

수진 : 맞아 강경 미내다리,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 개태사의 솥이 논산의 자랑거리로 여겨지고 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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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수 : 건축학적으로 볼 때 강경 미내다리는 구조적으로 잘 설계된 다리이고 원목다리는 소박하지만 지역 기술로 만들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돌과 돌 사이에 들어간 크고 작은 잡석들이 그걸 보여주고 있고.

소윤 : 맞아요.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다르네요.

주만 : 좀 대강 만든 것 같기도 하고. 아까의 미내다리와는 조금 다르긴 하네.

수진 : 오늘 우리가 얻어가는 것은 소윤이가 제시한 소통이네. 물리적으로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다리라면 정신적으로 소통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진심이 담긴 대화가 아닐까.

진수 : 그래 다리는 소통이다.

성현 : 모두 다리에 걸터앉아서 사진 한 장 찍자.

주만 : 그래 벌써 해가 저물었다. 빨리 사진 찍고 아까 말한 젓갈정식도 먹으러 가자.


산원목다리(원항교, 院項橋, 충남 논산시 채운면 야화리 193-2번지에 있으며 충남 유형문화재 제10호)는 조선시대에 만든 3칸 규모의 돌다리로, 양끝을 처지게 하고 가운데는 무지개처럼 둥글고 높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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