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997년 4월 22일
엄 교도관 가족은 아침식사를 하며 TV를 보고 있었다. TV의 대부분 채널에서는 상관을 살해한 경찰 뉴스만 반복해서 방송이 되고 있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발표할 때는 취재한 사람들의 말을 인용하여 방송했고 점점 더 확대되고 부풀려지기 시작했다. 마침 21일 저녁에 인터뷰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한강에 산책 나온 50대 남자를 인터뷰하는 영상으로 "어제 발생한 고위 경찰 가족 살해사건으로 온국민이 충격에 빠졌는데요. 이 충격적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시민에게 물어보도록 하겠습니다." 50대 남자에게 마이크를 가져가며 기자는 묻는다. "지난 20일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검은 돈을 받았고 이를 밝히려는 자신의 상관과 그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50대 남자는 기자를 한번 쳐다보고 입맛을 다시듯이 카메라를 쳐다보며 "아직까지 저런 경찰이 한국에 있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에 사형제가 있다고는 하나 집행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해요. 사형 판결이 떨어지면 바로 집행하면 안 되나요? 이런 잔혹한 범죄가 나온다는 것은 범죄에 대한 처벌이 너무 약하가 때문에..." 계속 이야기하려고 하자. 기자는 마이크를 가져오며 "예 의견 감사합니다. 이번 사건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정신적인 충격을 받았을 텐데요." 영상이 바뀌며 이번에는 김윤수의 집을 비추었다. 일부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으나 그 동네를 아는 사람은 모두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기자가 끈질기게 어떤 여성과 남자 아이를 쫓아가며 마이크를 들이대고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으셨을 텐데 혹시 알고 계셨나요?" 아무 말없이 빨리 걸어가는 그녀를 끈질기게 쫓아가며 "월급보다 더 많이 가져오던가 값비싼 선물 같은 것을 사온적은 없었나요?" TV를 보면 소윤이 엄마는 혀를 차며 "가족에게까지 저렇게 하는 건 아니지..." 소윤이가 엄마를 바라보며 "엄마 저 사람들이 큰 잘못한 거야?" 소윤이가 들은 밥숟가락 위에 고등어 한 조각을 얹으며 "너는 밥을 먹는 거에만 신경 쓰면 돼. 그나저나 혹시 저 사람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거 아니에요?" TV를 끄며 엄 교도관은 "모르지 아직 판결이 내려진 것도 아니고." 소윤이는 씹던 밥을 삼킨 뒤 "아빠 그러면 아빠가 저 나쁜 사람 사형시키는 거야?"
"소윤아! 그런 말하는 거 아냐. 그리고 다시는 사형이라는 말을 꺼내지도 말고."
"왜? 나쁜 사람만 사형하는 거 잖아. 나쁜 사람 사형하는 건 당연한 거 아냐?"
"그건 우리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소윤이가 좀 더 크면 아빠가 말해줄게. 그리고 빨리 밥 먹고 학교 가야지."
학교에서 정의로운 사회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난다. 흉악범에게 죗값을 치르게 하면 사회는 안전해진다고 말이다. 그런데 아빠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말로 나에게 죗값에 대해 설명한다. 세상에는 죽어도 될 마땅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이다. 좀 특이한 분이라 그런지 다른 부모들과 달리 아빠와 엄마는 한 번도 날 때린 적이 없었다. "맞을 짓을 하면 맞아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면서 말이다. 맞을 짓에서 그 짓을 판단하는 것조차 근거 없는 우월감에서 나오는 것이라면서... 근거 없는 우월감?.. 무슨 뜻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10년이나 된 중 중형차를 몰고 가는 엄교도관은 오늘따라 마음이 무겁다. TV에서 본 체포된 용의자가 자신이 일하는 곳으로 올 것 같다는 불안한 예감 때문이다. 어쩌다가 업으로 이 일을 택했지만 사형이 집행하고 나면 그 여파가 몇 개월까지 갔던 것 같다. 잘 마시지도 않는 술을 폭음하다시피 마시기도 할 때가 바로 그때다. 국가가 사형을 집행하면서 왜 인간에게 그 일을 집행하도록 시키면서 고통을 주는 것인가. 내가 맡은 역할이라고 하지만 그건 하지 않아도 될 또 다른 살인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도 없고 벗어날 수도 없었다. 아직도 그날의 일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1995년 11월 2일 지존파였던 6명을 사형하던 날이다. 그들이 한 짓은 어떻게 보면 사형당해도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걸 행하는 우리는 사회정의를 세웠다는 그런 만족감보다 그냥 우리랑 똑같아 보이는 인간을 죽였다는 그런 느낌이 더 크다.
"소윤아 이리로 와봐." 엄마는 커피메이커에서 내린 커피를 마시면서 나를 불렀다.
"응... "
"소윤이는 학교에서 괴롭히는 사람은 없어?"
"음... 없어. 애들 대부분이 날 좋아하거든."
"그래? 소윤이가 인기인였구나~ 그런데 괴롭힘 당하는 애들은 없어?"
"있긴 해. 나랑은 별로 안 친한 애인데 준구라고 조금.. 모자란 것 같기도 한애가 있어."
"애들이 괴롭히는 거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
"나랑 상관없으니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가끔은 너무 심하다 생각하면 그만하라고 말하기도 해."
"그래 소윤아. 엄마는 소윤이가 시험을 잘 보는 것도 좋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좋은데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
" 알았어 엄마~... "소윤이는 시계를 한번 쳐다보더니 "학교 갈 시간이야. 다녀오겠습니다. 그리고 정의의 사도도 되볼게요."
2015. 11월 14일
늦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사람만의 특권이다. 휴일을 정해놓고 살 수 있는 동물이 누가 있을까. 마침내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기로 마음 먹었다. 돌아가시면서 남긴 아빠의 유품을 나씩 정리하면서 과거와 이별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은 성경책... 아버지가 기독교였던 적은 없었다. 감옥에 있었던 8개월 남짓한 기간 동안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종교에 귀의했던 것인가? 별다른 생각 없이 성경책을 한쪽으로 던져버렸다. 전에 사놓은 파드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소파에서 일어선 순간 성경책 뒤쪽에서 종이 한 장이 조금 삐져나온 것이 눈에 띄었다. 성경책 두꺼운 뒷페이지의 안쪽에 넣고 밥풀 같은 것으로 봉한 것처럼 보이는 그곳이 시간이 지나자 낡아서 저절로 열린 것이다. 노란색의 종이 한 장....
"현철아... 네가 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면 좋겠구나. 못난 아빠 덕분에 힘든 시간을 보냈을 텐데 우선 미안하다는 말부터 하고 싶다. 엄마하고는 잘 살고 있니? 아빠가 정말 살인을 했는지 궁금할 테지. 아빠는 살인자가 아니란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힘들단다. 약 2년 동안 우리 팀은 권력형 비리를 조사해왔단다. 그런데 핵심으로 가면 갈수록 협박의 수위가 커졌는데 우리가 수사를 접지 않자 팀의 수장을 제거하고 그 죄를 나에게 뒤집어 씌운 거야. 내가 그때 말하지 못한 것은 나만 조용하면 다른 사람이 다치지 않고 특히 너와 엄마가 무사할 수 있기에...
아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진실이 알고 싶다면 아빠의 후배였던 민성우와 박민희를 찾아서 물어봐도 좋아. 그 둘은 믿을만한 사람이니까. 그리고 서울교도소의 엄진웅 교도관에게 쪽지 한 장을 남겼는데 그걸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을 맡겨놓았단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무척 위험하니 조심하거라. 그리고 엄마에게도 미안하단 말을 전해줘."